"아침에 햇볕을 먼저 받는 곳은 저녁때 그늘이 먼저 지고, 일찍 피는 꽃은 그 시듦도 빠르다는 것이 진리이다. 운명은 돌고 돌아 한 시각도 멈추지 않는 것이니 이 세상에 뜻이 있는 사람은 한 때의 재난 때문에 청운의 뜻까지 꺽어서는 안된다(다산 정약용, 하피첩 ‘내가 살아온 날들’)"는 말처럼, 우리 삶은 한 시도 쉬지 않고 촌각을 다투며 달려나가고 있다.
이런 인생살이의 변하지 않는 구조 속에 숨어있는 이면에서 현재의 나의 삶을 사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만큼 나의 중심을 잘 잡아 세상변화의 급류에 휩쓸리지 말고, 긴 호흡으로 멀리 내다보며 가까이 있는 현재에 시선을 집중하는 것이다.
항상 멀리 보고 있기 때문에 눈 앞의 즐거움과 감동의 어지러움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인 성장의 즐거움을 추구하게 된다. 그만큼 현재의 시련이나 어려움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발전을 위해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끈기를 가지고 녹여냄으로써 그 과정을 하나의 긍정적 성취 경험으로 몸 속에 기억하게 된다.
어떤 사람의 살아온 기술이나 결과 같은 물리적 요소로 그 사람의 삶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인생은 그의 피와 땀, 그리고 열정과 노력 같은 정신적이고 화학적인 요소들의 다양한 조합이 있기 마련이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들리는 것도 있고 심지어 일상의 삶의 현장에서 느껴지는 것을 바탕으로 주인공인 나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먹을 것에만 목을 매는 동물들과 달리 나를 표현하기 위해 행동하고 말하는데, 감정이라는 미묘한 심리적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많이 알고 실력이 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자질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동물을 길들이기 위해서는 당근과 채찍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겠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칭찬과 격려, 그리고 세심한 배려 속에서 싹이 튼 서로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진정한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고 창의적이 되며, 몰입을 통해 생산성이 높아진다. 하드웨어적인 구조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적인 방법의 문제라는 것이다.
즐겁고 편안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원하는 만큼 얻으려는 것은 우리의 기본적인 욕망이며, 그것은 돈과 같은 물질적인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음식, 여행, 운동, 문화 등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더 많이 얻을수록 더 만족스럽고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인간적인 소통의 중요성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인간관계는 협상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협상이 없는 삶은 존재할 수 없다. 단지 협상을 잘 하거나 못하는 상황만 있을 뿐이다.
협상의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상대를 인정해주는 대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있다. 마라톤 대회에 처음 참가한 사람은 42.195km라는 거리만 보지만, 경험이 많는 마라톤 매니아들은 함께 참가한 주자들이나 달리는 주로의 특징, 주최측의 급수대나 안전지원, 그리고 봉사자와 관중들의 표정까지 전체적으로 대회를 보고 즐길 수 있다. 이처럼 내가 하고자 하는 협상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을수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술 같은 미묘한 힘을 활용하고 발휘하여 더 많은 즐거움의 기회들을 얻을 수 있거나 부상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모두가 소통의 기술을 말하고 있지만, 아무나 터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만큼 자기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만큼 지도자들에게 바라는 바가 더 크게 된다는 말이다. 저마다 소통을 외치지만 일방적인 것으로 되고 마는 경우가 바로 사고의 유연성의 부족으로 인해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방향성과 내용을 갖고 있거나 개발하지 않음으로 해서 상호간의 불신을 해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언제나 이성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감정적이 되면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고, 듣더라도 믿지 않게 된다.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면서, 필요하다면 사과를 해서라도 상대의 감정을 보살펴서 상대가 다시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는 이유다. 협상에서 만능으로 통하는 전략이란 있을 수도 없으며, 존재하지도 않는다. 저마다 다른 가치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르다는 현실적 차이를 인정하고, 그런 차이를 선택함으로써 더 많은 옵션을 주고 더 많은 아이디어들이 결과물로 만들어질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신뢰가 가장 중요한 만큼 절대로 상대를 이기려 하면 안되는 이유다. 남북한의 정치협상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서로를 믿지 못하면 협상 테이블이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협상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이 상대에게 초점을 맞추고 상대의 기분을 파악하고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이 알고 있는 것처럼 협상에서 전문지식과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것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우리 의료계가 심각하게 고려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의료가 의료 전문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인정하고 전문가로서의 전문지식만을 내세울 형편이 아니라는 말이다.
협상에서 합의에 이른 결정적인 계기가 전문지식과 관련이 있는 경우는 8% 뿐이었으며, 호감이나 신뢰처럼 인간적인 요소, 즉 협상자들간의 인간관계에 의해 합의을 이끌어낸 경우가 무려 55%로 과반수가 넘었고, 나머지 37%는 협상을 진행하는 절차적인 요소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최근의 삼성과 애플의 미국 내 재판결과처럼 상대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배심원 구성 등의 절차에 문제가 있다면 전문적인 지식이나 의견은 전혀 쓸모없는 것일 뿐임이 연구결과에서도 밝혀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상대에게 내가, 혹은 나의 정체성이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상대의 머리 속에 박힌 나의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만큼 서로 터놓고 이야기할 정도로 신뢰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다. 요즘과 같은 서비스 산업의 시대에 소비자들이 떠올리는 기업의 이미지가 브랜드가 되어 기업을 존속시키는 힘이 되는 이유다. 우리 의료계가 국민들에게 전해주는 아름다운 장면과 감동을 주는 행동의 이미지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 모두 한번씩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의료계의 이미지를 재고하고 가슴 속에 오래 남아있게 만들 수 있는 장면과 감동의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의료계 지도자들의 선택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 즉 먼저 사람관계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와 가까운 직역의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정치력에서 볼 수 있듯이, 절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합의를 이끌어낼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끌어낸다 하더라도 오래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특히 지도자들만이라도 잊지 않았으면 싶다.
(서초구의사회지 2012년 후반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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