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서초구의사회 송년모임이 있었다. 오랫만에 여러 선생님들을 만나 반갑고 즐겁게 이야기하고 떠들고 수다를 떨다 돌아왔다.
물론 요즘 토요일마다 실시하는 대정부투쟁인 토요휴무 운동에 동참해달라는 부탁과 당위성도 함께 토론되고 서로 논박하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단지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받는 외부의 왜곡된 시선과 오해들은 마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짝퉁을 입거나 쓰고 있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자기과시에 따른 기만행위의 높은 가능성이나 비슷하다.
환자를 진료하는 일에 몰두해서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삶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봉사하는 의사가 되겠다던 젏었을 시절의 목표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이 현실의 우리 의사들이 갖는 절망감이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면 두 걸음 뒤로 물러서는 기분이랄까? 나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강압에 의한 강제선택의 결과 스스로의 도덕적 잣대가 무너지는 것을 보는 의사들의 심정이 그렇다는 말이다.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사람이 처음에는 어려운 다이어트의 규칙을 지키려 애를 쓰지만, 먹고 싶다는 욕구를 참는 일이 계속되면서 정신적으로 상당히 고갈된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다가 누군가 권하는 초콜렛의 유혹에 빠져 그만 지금까지 굳건하게 지켜온 규칙이 무너진다.
'이왕 이렇게 된거 이번 한 주는 마음대로 먹고 다음 주에 다시 진짜로 시작해보자.'며 다음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풀려난 자유만을 만끽한다.
나의 사회적 행동은 때로 측정이 가능하다. 내가 하루에 환자를 몇 명이나 보는지는 즉시 눈에 보이지만, 진료와 관련한 창의성이나 진정성 같은 보다 주관적인 목표의 설정이 필요한 장기적 태도는 결과가 금방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행동은 실행과 동시에 대개 평가를 받게 되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진료와 관련된 일을 잘 수행해서 환자를 만족시키고 그로 인해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편향되고 왜곡된 보수체계와 그를 감추기 위한 인센티브 제도들 때문에 이것이 분명 옳은 일임에도 저것을 선택하고자 하는 유혹, 즉 의사로서의 정직성과 이익의 극대화 사이의 갈등에 빠지게 된다.
처음에는 모두가 학생시절에 배운 열정적인 의사로써의 각오로 사회에 나오지만, 처음에는 환자를 위해 봉사하는 좋은 의사라는 자신의 초심을 지키려 노력하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러 이익 고려라는 문턱을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부정행위가 매우 많은 상황에서 부정행위의 양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는 실험에서 진품보다 짝퉁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정직한 사람이라는 스스로의 믿음을 지키려 노력하지만, 어느 시점에 자신 설정했던 이 기준을 무너뜨리고 기회가 될 때마다 부정행위를 저지르게 된다고 한다.
'어차피 이렇게 된거 돈이나 벌자'며 자포자기하게 된다고나 할까.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집단이라 매도하는 정부 정책당국자들의 일방적 통계조작과 허위발표에 적절히 대응해오지 못한 결과 많은 의사들이 자존감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의사들이 투입하는 노력에 상응하는 적절한 보수체계와 대우를 받아 존경받는 의사로서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확립하고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보장을 얻기 위해 우리는 지금 대정부 투쟁을 하고 있다.
옷이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예비군복을 입은 예비군들처럼, 싸구려 짝퉁은 그것을 쓰는 사람들이 입는 옷을 선택하는 도덕적 판단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왕 이렇게 된거'라며 젊은 의사들이 자포자기 하여 도덕적 붕괴의 수준으로 떨어지기 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방책을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이번 대정부 투쟁의 진정한 이유다.
오늘도 즐겁고 건강한 하루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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