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어릴 적 국민학교 입학하기 전에 사찰에서 2년 여 자란 적이 있다. 집에 오신 스님께서 명이 짧다고 해서 부모님께서 아들의 명운을 위해 스님께 믿고 맡겼기 때문이다. 경상남도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석남사와 붙어있는 동이암이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는 석남사는 비구니 스님들이 계셨고, 동이암에는 비구스님들이 계셨다.
그 때의 기도 덕분인지 모르지만, 중학교 졸업식날 먹은 소고기 국밥 때문에 두드러기가 나서 심장과 호흡이 끊어져 죽었다고 이불보로 싸서 구석에 밀어놓고 가족들이 울고 슬퍼하고 있는데, 30분이 넘어 다시 기적적으로 호흡이 돌아와 살아난 경험이 있다. 어쨌거나 불교는 나의 삶에 항상 함께 있어온 친구와 같은 친근한 존재였다. 의과대학 불교학생회장 할 때는 말로만 믿는 막연한 기복적 신앙자세에서 탈피하여 언행일치를 기치로 전회원들이 반야심경이나 천수경 같은 불경을 외우고, 예불을 직접 목탁치며 올리는 실천하는 신행일치의 삶을 강조해서 회원들을 괴롭힌 적도 있다. 그 때 진실로 접하게 된 것이 금강경이었다. 나는 불교신자로서 경전의 글자의 뜻이나 의미에는 큰 관심이 없다. 오로지 현실적인 나의 삶에 불교적 진리가 어떻게 스며들게 할 수 있는가에 있다. 덕 높은 스님들의 멋진 말씀보다는 내가 생활 속에서 느끼고 나를 지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귀절들이 더 귀하고 발견하는 것이 더 즐겁고 행복하다.
우리 집 가훈이 "사람이 평안한 경지에 이르러 해야할 일은 유능하고 정직하고 말씨는 상냥하고 잘난 체하지 말아야 한다"는 귀절인데, 이것도 부처님께서 득도 후 초기 설법에 나오는 말씀 중의 한 귀절이다. 한 세상 마음 편하게 살려면 능력이 있어야 하고 정직해야 하고, 상냥해야 하며, 잘난 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지금도 그대로 필요한 인품의 요소들이다. 사랑하는 연인이 결혼하면 행복만 주욱 이어질 줄 알았는데, 서로 다투고 갈등하고 미워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서로를 소유하고 통제해서 자신의 정신적이나 신체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용하려는 데서 시작된다. 그렇게 서로를 위하고 배려하던 두 사람 사이가 왜 이렇게 변하게 되었을까? 바로 '나' '너' '내 것'이라는 상대적 명칭이나 존재에 사로잡혀 실체없는 형상들이 춤추는 방향대로 조종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조종하고 있다는 착각일 뿐 사실은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외부에 나타난 형상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상을 버리면 그런 형상 뒤에서 형상이 나인 척 가리고 있는 진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길을 가다가 나뭇잎이 떨어져 얼굴을 스치거나 갑자기 비가 내려 옷이 젖어도 별로 기분이 나쁘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나뭇잎으로 내 얼굴을 치거나 물을 부었다면 당장 화가 나 싸움을 할 것이 뻔하다. 사람이 한 일이 아니면 나지도 않을 화가 사람이 했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실수로 그랬을 수도 있고 고의로 했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 때문에, 사람이라는 대상, 어떤 형상이 있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사랑하는 일도, 미워하는 일도, 싸우고 시비하는 모든 인간관계가 모두 밖으로 드러난 어떤 형상, 즉 존재에 집착하는 데서 오고 있다. 이 어떤 눈에 보이는 형상이 행복을 보장하는 사랑이라 착각한다. 집착을 풀고 그런 형상들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로 바라보는 것이 불경 공부의 목적이다.
아무리 훌륭한 진리라 하더라도 올바른 이해와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저 허울좋은 그림의 떡일 뿐이며, 한낮의 허망한 꿈에 불과하다. 진리란 나의 삶 속에 배어있어 진실로 체화될 수 있어야 진정한 삶의 힘이 될 수 있다. 부처님이 35세에 보리수 나무 아래서 생노병사의 고통을 끊고 득도를 하신 후에 80세에 열반에 드실 때까지 45년간 설법하신 내용을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기록한 경전이 팔만대장경이다. 이 45년간의 설하신 내용의 설법 내용을 들은 그대로 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신 분이 25년간 그림자 시봉을 했던 아난존자였다. 진정한 불자라면 스님이나 신도를 포함하여 부처님이 하셨던 최소한의 소유을 바탕으로 신앙과 수행과 사회기여에 매진하는 실천수행법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우리 나라 일부 스님들처럼 '선'수행이라는 이름으로 신앙도 수행도, 신도들이나 사회에 대한 기여도 매사 얼렁뚱땅하는 식으로 부실하기 짝이 없는 것은 세상을 우습게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현실의 삶에서 신도들이 추구하는 것은 항상 행복과 평안이지만, 진정한 삶의 기쁨은 마음에 걸림이 없고 하늘이 무너져도 두려움없이 살아갈 수 있는 당당한 인생의 길을 발견하는 것이며, 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금강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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