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항상 마음 속에 어떤 형상이 떠오른다. 여기서 마음에 떠오르는 상은 어떤 모양을 의미한다. 물 잔을 보면 모양과 용도의 두 가지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용도도 항상 바뀌고, 모양도 항상 바뀌고, 다른 용도로 쓰이기도 하므로 이런 모양과 용도가 항상 존재하는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제여사께서 뱀만 보면 징그럽다고 도망가는 이유도 '뱀은 징그럽다'는 고정관념과 집착된 상상이 실제로 '징그러운 느낌'으로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음 속 생각의 바탕에는 항상 아상(나라는 생각), 인상(나와 너로 구분짓는 생각), 중생상(나에게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려는 생각), 수자상(내가 영원히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의 네 가지 생각이 있으며, '내가 중생을 구제했다'라는 것은 '나'라는 상을 취하고, '중생'이라는 상을 만들고, '구제한다'는 상, '구제받을 대상이 있다'라는 상, '구제해야 한다'는 상을 만든다.
이런 ‘내가 했다’라는 생각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고 속박이 생기게 된다. 집안이나 자식들에게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상에 도취되어 기도하는 행위는 새로운 번뇌의 씨앗을 한 웅큼씩 주위에 뿌리는 것과 같다. 인생살이의 번뇌와 망상은 이런 네 가지 상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일시적으로 사라진 듯하여도 언제라도 다시 싹이 트는 끈질긴 업의 발현이 된다. 나와 상대를 구분함으로써 오는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이 사회적으로 하나의 이데올로기화해서 다른 사람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아가는 것이다.
다른 세포와의 연관이나 몸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 무한 증식하는 암세포가 결국 몸의 생존을 망치게 만드는 것처럼 아상이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고, 인상이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며, 중생상이 지구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와 너, 생물과 무생물을 모두 하나로 보는 사고, 그리고 그것이 시간과 함께 고정되어 있지 않음을 항상 직시해야 한다. 보살은 어떤 경우나 대상에 대해서도 구분하거나 분별하지 않는 마음, 즉 일체관을 가지고 일체 중생을 다 구제하겠다는 자비심을 가지고 함께 바라보며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세상 만사가 일시적인 방편일 뿐 나와 너 사이에 본래 경계가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면, 누구를 구제하거나 구제받거나 하는 구분하는 일이 없어지고, 구분하지 않으면 제도받은 중생도 제도받는 중생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부부가 나와 너를 구별하거나 분리하여 경계를 짓는 마음만 사라진다면, 본래가 일체이므로 처음 그대로 항상 똑같은 사랑과 감사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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