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병'이란 질병 아닌 증상이 있다. 주말을 잘 쉬고, 월요일마다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느끼는 증상을 말한다. 휴일에는 장거리 여행이나 늦은 음주, 영화감상 등 평소보다 늦게 장시간 활동하게 되면서 평소 리듬이 깨지면서 나타나는 상황이다.
월요일 아침 현업에 복귀했을 때 육체적 피로를 느끼게 되고 매일 되풀이되는 지루한 일상과 지나친 스트레스, 업무 중압감이 더해져 정신적 피로까지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삶에서의 역경은 봉쇄와 격리가 아니라 다시 움직일 때 나타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끼친 질병과 상관없는 경제 상황의 어려움이 시작된 것도 같은 현상이다. 봉쇄와 격리는 상대적으로 유지하기 쉽다. 이 상황이 휴가를 보내는 것과 유사하게 한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형태를 발명해야 할 때 생겨난다. 옛날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진짜로 어려운 시간은 그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시간성은 삼원성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가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피할 수 없이 시간이 지나 때가 되면 죽음에 이르게 되는 직선적 시간이며, 둘째는 하루와 계절처럼 주기성을 가지고 순환하는 시간, 그리고 셋째는 매일의 삶에 서도 위험과 희망이 반복되는 이중적이면서도 숙명적인 결단의 시간들을 경험하게 된다.
지나간 세계적인 코로나 팬데믹은 직선적이면서도 주기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모두는 전염병은 결단의 시간들이 되어야 비로소 끝나게 된다. 이것은 재앙으로 인해 우리가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게 될 시간을 의미한다.
수많은 자유주의자들에게 예상치 못한 트럼프 같은 정치인의 출현은 운명적 결단의 선택 시간을 강요하게 된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기득권 질서의 기반을 산산조각 내었거나 또 낼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런 정치인 자체가 코로나처럼 우리 사회에 이미 잘못되어 있었던 것의 증상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여전히 언제나 새로운 것이 생겨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새로운 사회적 삶의 질서와 방식을 창안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상황은 그냥 조금 더 나빠지는데 그치지 않고 훨씬 더 악화될 것이다.
지나간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이 우리에게 제대로 된 인간이 되는 일의 기본적 의미를 포함해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될 새로운 시대를 공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행동은 우리 생각을 따라야 한다.
어쩌면 지난 20세기에 우리는 산업화 과정을 급격하게 겪으면서 세상을 너무 빠르게 바꾸려고만 노력했을 뿐, 질적은 숙성의 여지를 제대로 가지지 못했다. 지금은 다시 그런 변화를 새롭게 따져볼 시간이 도래하고 있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