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나이 만 61세, 내 어릴 적만 해도 완전히 뒷방차지한 해소 기침 달고 사는 노인이거나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태일 가능성이 높지만, 현재의 나는 늙음을 생각하지 않고 산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현실적인 생각이다.
살아오면서 집안 인테리어 바뀌듯 사회 구조나 나 자신의 생활도 많이 바뀌었다. 바뀌지 않은 것은 오직 나 자신의 몸을 먹여살리는 밥 위주의 식사 뿐이다. 서랍 속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사진들 속에서 언제 찍었는지 기억도 희미한 흑백 사진들을 발견하거나 찍은 시기는 대강 알겠는데 사진 속 인물들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내가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은 시기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삶 그 자체의 양과 질이다. 아니 폭과 깊이다. 앞뒤 맞지 않는 문제들이 많아질수록 자연스럽고 확실했던 모든 문제들이 바람에 먼지 흩어지듯 이리저리 바뀌고 변화하여 결국 전체적인 모습마저도 사라져 버린다. 젊은 날은 들어갈 공간들이 많아 내용이나 양에 관계없이 빼곡히 들어 앉았던 기억들이 나이가 들수록 공간이 부족해지면서 손에 잡히는대로 예전의 기억들을 내다버린 모양이다.
기억의 집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과거로부터의 배움이 어려워지고, 자신에 대한 신뢰가 줄어들면서 무엇 하나 완전히 만족감을 느끼며 실행할 용기가 줄어들고 인생살이가 그만큼 어려워진다.점점 더 많은 삶이 일관성이나 영감을 잃고 점점더 억지로 특별히 노력해야 겨우 얻을 수 있을까 말까한 것으로 변했다.
기억이 없어지는 이유는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기억을 유지하는 힘은 그대로인데 새로운 것을 기억하거나 필요한 기억만 끄집어내는 힘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건에 대한 기억은 경험의 최종 산물인 감정과 항상 연결되어 있어서 당시 분비했던 것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어 같은 느낌을 느끼게 된다. 새로운 것이나 자극이 없는 현재의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더 이상 만들 수 없어서도 아니고, 더 이상 저장할 공간이 없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너무나 앞뒤가 안 맞고 개연성이 없어지게 되면서다.내 자신의 비현실성만이 내게 남을 것이다. 새로운 자극이 없는 현재의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더 심한 것은 기억은 과거 사건의 복제가 아니라 복제와 위조가 섞인 연출이다. 과거의 경험에 대한 느낌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기억으로 만들어지지만, 나의 기억 속에는 내가 없다는 말이다. 오로지 내가 만드는 이미지 속에 존재할 뿐이다. 인간관계 속에서 흥분과 안도감, 고통스러운 경험으로부터의 해방감 등과 같은 유쾌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관계가 오래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느끼는 것은 대부분 뇌와 혈액 속의 화학물질 때문이다. 낭만적이지는 않지만 내가 사랑에 빠지는 것도 신경화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마음 속에서 어떤 상황을 계속 함으로써 이 상황이 더 자동적으로 실행되도록 만들면 뇌는 그 마음을 만드는 데 의식적인 자극이 덜 필요해진다. 이미 아는 것을 반복적으로 회상할수록 그 마음 상태를 만들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은 더 적어진다.
내가 어떤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는지, 그에 대응하는 신경망을 얼마나 반복적으로 활성화하는지, 의지를 가지고 어떤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지에 따라 신경학적 존재인 '내'가 결정된다. 뇌와 마음은 정지상태에 있지 않다. 살아있는 뉴련의 활동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뇌나 마음은 나라는 조종자가 어떤 회로를 사용할지 결정하는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몸이 식사를 통해 만들어지듯이 마음은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경험은 서서히 뇌를 조각해 나가서 마음의 모양을 만든다. 이런 조형의 결과 일부는 선명한 기억의 형태가 되지만, 대부분은 영원히 의식의 수면 아래 암묵기억으로 남아있으면서 서서히 우리 마음의 내적 모습을 만든다. '나'는 과거의 기억을 통해 대뇌신피질에 새겨진 어떤 독특한 신경회로의 조합이다. 운동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할수록 점점더 기억의 질이 좋아지게 되는 이유다.
풍요롭고 행복하고 건강한 추석명절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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