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체성을 표현하고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평생동안 기억으로 축적된 경험의 정보들이 대뇌신피질 속에 새겨진 독특한 서로 다른 신경회로의 조합들로 활성화되어 나만의 독특한 생각과 행동, 성격과 성향, 의견과 판단, 기억과 기술, 호불호의 개념 같은 '나'란 사람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독립된 개체로서 나를 강화하고 재확인한다.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이동수 소장팀이 2005년부터 진행중인 ‘한국인 정체성 연구’ 과정에서 성인남녀 199명을 심층 면담해 자아정체감을 분석한 결과, 우리 국민 4명 중 3명이 자아정체감이 약해 위기상황에 닥치면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술잔만 기울이며 문제를 회피하거나 손을 놓고 누군가의 도움만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자아정체감(Ego-Identity)이란 미국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이 주장한 개념으로, 개인의 자아가 인격체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통합하는 개인 나름의 독특한 방식을 의미한다. 자아정체감의 성취는 청소년기에 이뤄야 할 주요한 발달과업 중의 하나이며 일생동안 정체감의 발달과 성숙이 지속된다고 알려져 있다. 자아정체감이 확고한 사람은 위기 및 환경변화에 유연하고 적절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아정체감이 취약한 사람들은 평소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뚜렷한 문제를 일으키거나 스트레스를 높게 경험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실직, 이혼 등으로 주변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면 그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과도한 음주나 자살과 같은 비합리적 선택을 하기 쉽다. OECD 자살율 1위, 양주 소비율 1위와 같은 한국 사회의 사회병리적 현상들이 이와 같이 한국인의 자아정체감과 관련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람과 사물, 시간과 장소, 사건과 사고를 연합하여 특정 신경망으로 저장된 이미 알고 있는 정보들을 조합하여 나를 기억함으로써 내가 누구인지 내 정체성이 어떤 것인지를 반영한다.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면 과거에 경험했던 사람이나 장소, 사물이나 시간, 그리고 사건들에 관한 것을 대화 주제로 삼으면서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를 주고 받으면서 상대와 공통된 신경망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지 알아보기 위해 모든 신경회로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을 처음 만나면 먼저 고향이 어딘지, 언제까지 살았는지, 어느 학교를 언제 나왔는지, 친구들은 누가 있는지, 어떤 특별한 사건사고가 있었는지, 어떤 취미나 경험이 있는지 등을 묻거나 대답하면서 서로의 공통분모를 모아가는 과정이 같은 신경회로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친밀도가 달라지고 상대에 대한 호감과 인정도가 달라지게 된다.
이것이 나만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유지하는 방법이다. 나는 과거에 알고 있던 것들과의 관계를 통해 나를 인식하고, 이런 기억의 과정은 나를 조금 더 습관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다른 마음상태를 갖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신경망들의 반복적인 활성화가 없으면 개성이 약해지고, 나를 다른 사람과 구분하는 역할이 약해지면서 정신적으로 쇠약해질 수 있다.
나는 나만의 독특한 신경회로와 나만의 활성화 패턴을 가지고 있으며, 날씨를 표현하는 기상도처럼 나만의 신경 기상도를 가지고 있다. 뇌활동영상을 보면 대뇌활동의 큰 변화없이도 생각을 처리하는 특정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일 어떤 주제에 대한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는데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결국 반복적인 생각이 가장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마음이 되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신경회로에 짜넣고, 이것이 활성화되는 일상적인 신경패턴이 되면, 이 틀이 곧 나의 철학과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기억하고 느끼고 배우고 실행하는 가장 자연스런 방법이 된다. 변화를 만드는 것은 이렇게 일상적으로 활성화되는 마음의 틀을 다시 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현재의 나를 만든 습관을 바꾸어 새로운 신경회로를 만드는 엄청난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나는 주위 환경에 반응함으로써 나의 일상을 지배할 수 있다. 나에게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 힘을 통해 스스로 채운 습관이라는 족쇄를 풀고 효과적으로 신경망과 마음을 새롭게 바꿀 수 있다.
오늘도 즐겁고 건강한 하루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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