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올해 해야할 숙제 하나를 끝냈다. 대한외과의사회 추계학술세미나를 그런대로 잘 마무리했다.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알게 되고, 어떤 사람들과 인간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좋은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친밀감의 정도는 변하기 마련이다. 어떤 때는 서서히, 또 다른 때는 순식간에 변한다. 시간을 가지고 상대에 대한 거리감을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상대와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는지 멀러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나는 어릴 때 느꼈던 형과 나에 대한 부모님의 차별적인 대우 때문에 받은 마음의 상처를 육십이 넘은 아직도 완전히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한 걸음 물러서 두 사람 간의 관계를 개선할 방법을 찾기에는 이미 시간이 너무 늦어버렸다.
형이 뇌출혈로 수술을 받고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형제는 어려울 때 아무리 서로 몸을 밀착시키려해도 고슴도치처럼 서로 찔리지 않기 위해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삶을 살아왔다. 가까이 살면서 자주 보지 못하고 너무 멀리 떨어져 평생을 살아온 것도 큰 이유 중의 하나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상대에게 느끼는 감정적 거리는 내가 신체적으로 얼마나 가깝게 행동하느냐에 달려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볍게 포옹을 하는 것과 그냥 악수로 인사를 끝내는 것과는 감정적 거리의 차이를 알 수 있다.
감정적 거리에 대한 신체적 신호를 이해하면 친밀감을 가늠하는데 도움이 된다. 나는 상대의 개인적 경계선을 넘어 상대에게 불편감을 줄 정도로 의식적으로 가까이 하려고 행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에 대해 직접 만나고 이야기하고 잘 알게 되면 인간적 냄새가 나고 깊이도 깊어지면서 상대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오해에 쉽게 빠지지 않게 된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직접 옆으로 가까이 앉아 이야기하면 더욱 친밀감을 느끼고 개인적인 관계를 맺기가 더욱 쉬워진다.
서로 생각이 다를 때는 전화나 이메일로 이야기하기보다 직접 만나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 오해의 위험을 줄이고 문제를 더 빨리 해결할 수 있다. 몸 동작이나 어조를 통해 감정을 전달할 수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음성의 높낮이를 통해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일반적인 평범한 이야기들도 주제가 될 수 있다.
오랫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만나서 할 이야기들을 준비하지만, 자주 보는 사람들을 그런 준비가 필요없다. 그냥 흘러가는 날씨나 신문의 가십거리 같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로 서로의 개인적인 거리를 좁힐 수 있다. 너무 나를 드러내어 사생활이 침해당하는 기분이 들지는 않아야 하지만, 자주 가깝게 지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런 과정을 감수해야 될 때도 있다.
나는 항상 상대에게 자문을 구하는 방식으로 이런 문제에 접근한다. "어덯게 생각해?"라고 묻거나 대화가 어색하게 진행되거나 서로 불편감이 느껴질 정도로 한계를 넘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는 편이다. 감정이 지나치게 노출될 경우 그런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
서로 상처가 깊어 현재로서는 서로 말을 하기 어려운 갈등 사항들은 안타깝지만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해야할 지 모르겠다"며 적절한 감정이나 마음의 유지가 가능해질 때까지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그것이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칫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하다보면 나의 취약점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에 경험을 말로 표현하기는 모호하고 어렵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마음을 열고 감정적 경험을 서로 나누는 것이 친밀한 인간관계를 만드는데 더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오늘도 즐겁고 건강한 하루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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