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귀절 금강경 7-1]7분. 얻을 것도 없고 설할 것도 없다 : 깨달음에는 일정한 기준이 없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부처님의 큰 깨달음이라는 말인데, 깨달음이라는 것이 '일정하게 정해진 무슨 틀이 있는 법(유정법有定法)'이 있어서 채우거나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라 정할 수 없는 어떤 법(무정법無定法)'을 깨달았다는 말이다. 즉 무유정법(無有定法)이란 정힘이 있음이 없는 법이 바로 그것으로 불법의 핵심이다. 이렇다 저렇다거나 크다 작다, 혹은 길다 짧다거나 더럽다, 깨끗하다 등등 단 하나라도 그것의 진실을 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 이것이 불법이다거나 이것이 진리이다하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무정법이라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부처라 했는데, 여래가 아뇩다라삼막삼보리의 절대 진리를 얻음이 없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팔만대장경의 부처님 설법내용이 전해지고 있는데 어떤 법도 설한 적이 없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글자의 의미에 얽매여서 불법을 이해하려면 더욱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깨침의 도리다. 무유정법이란 말 그대로 정함이 없는 법이라는 말이다. 문자 속에 감추어진 근본도리를 읽어내야 한다.
얻을 바도 없고 또한 설한 바도 없는 법이기에 무엇을 얻었다거나 설했다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의미일 뿐이다. 거울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형상도 갖고 있지 않지만 얼굴을 비추면 얼굴이 나타나고 책이나 꽃 비추면 책이나 꽃의 형상이 나타난다. 거울은 수많은 형상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해도 맞는 말이고 한 그림도 그린 바가 없다고 해도 맞는 말이다. 어떤 중생이 부처님 앞에 서면 그 중생의 업과 인연이 거울에 형상이 비치듯 부처님에게 드러나고, 부처님께서는 그 중생의 실상을 주제로 해서 있는 그대로를 정리해 놓은 것이 팔만사천의 하나 하나의 경전이라 할 수 있겠다. 부처님이란 거울에 팔만사천의 서로 다른 중생들이 비춰졌다는 말과 같다.
부처님께서 45년간 만난 사람들의 수가 만나지 못한 사람들의 수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설하신 법문보다 설하지 않은 말씀이 한량없이 많을 것이기에 금강경에서 아무 말씀도 설하신 바가 없다고 까지 표현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부처님의 말씀은 한결같이 부처님이라는 거울에 비친 중생의 그림자일 뿐이기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는 하나도 없는 셈이다.
세상을 큰 원주로 생각하고 원주에 늘어선 사람들이 원의 중심으로 향하는 길은 저마다 다른 것이 당연하고, 서로 비슷한 지점이면 비슷한 길을 가겠지만, 서로 마주보고 서있는 사람들은 서로 정반대의 길을 통해 원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을 중도의 이치라 한다. 곧 중도란 중심으로 가는 길이 무수히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정해 놓은 방향은 어느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무유정법이다. 어떤 처지에서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당황하거나 흔들림 없이 나 자신이 갈 길을 찾을 때 바로 무유정법을 깨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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