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만큼 행복하고 짜릿하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활동을 주위에서 쉽게 찾기가 어렵다. 달리는 동안에는 다양한 생각과 느낌들이 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한다. 이런 인식의 변화 현상은 발을 지면에 규칙적으로 내딛는 리듬의 최면효과 때문이다.
달리는 동안 정신은 육체와 함께 어디론가 달아나고, 뇌 속과 다리의 리듬과 팔의 흔들림과 움직이는 시각적 변화 속에서 신비로운 생각의 파도가 일어나 고동치는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달리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내가 달릴 때 나의 정신은 텅빈다. 달리는 동안 드는 모든 생각은 그 과정에 종속되어 있다. 달리는 동안 나를 덮치는 사유는 갑자기 나타났다가 아무 것도 바꾸지 않은 채 홀연히 사라지고 마는 가벼운 돌풍과 같다."고 했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사유는 의심하고, 이해하며, 긍정하고, 부정하며, 의욕하고, 의욕하지 않으며, 상상하고, 감각하는 것이다. 의욕은 통상 의지의 능력으로 사유와 구별되는 것이나, 데카르트는 의지와 사유를 엄밀히 구별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의지의 자유와 사유의 자유도 구별하지 않고 있다. 상상된 것은 그 어느 것도 참이 아닐 수 있지만, 상상하는 힘은 그 자체로 현존하는 것이며, 사유의 한 부분이라고 본다. 감각도 마찬가지로 감각된 것은 의심스러운 것이나 내가 감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으며, 이것은 사유의 일부분이다.
칸트에 의하면 감성작용이 개별적인 어떤 것으로 향하는 감각인데 반해 사유는 보편적인 것, 본질의 파악에 관한 능력이다. 칸트에서는 순간적이고 개별적인 지각의 이해를 넘어서 일정한 규칙 아래 현실의 경험으로 통합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달리는 경험이 사유과정에 중요하지만, 팔과 다리의 움직임에 따라 살아나고 고동치는 리듬이 중요하면서도 달리는 동안 사라진 정신의 공백 사이로 돌풍처럼 스며드는 인식들이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않고 사라질 수도 있지만 가끔씩은 나를 아주 많이 변화시킬 수 있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지는 깃털같은 숨결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한 겨울의 차가운 삭풍은 뺨을 호되게 한 방 후려치는 것같은 아픔을 남기는 것과 똑같다.
이런 감성적 경험의 인식 변화는 준비가 되었을 때 온다. 시간이 무르익어야 오지, 내가 준비가 되었다고 강제하거나 재촉하거나 협상으로 유인할 수는 더더욱 없다. 내가 평소에 풀려고 노력했던 문제들이 달리는 동안 내 눈 앞에서 저절로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린 것이 얼마나 되는지 일일이 기억할 수 없다.
달리기는 나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친숙하다는 감각적 인상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달리기 속에 담긴 심오한 뜻이 무엇인지 알고자 달리는 현상을 사유하고 현상 자체와는 다른 내면의 본질을 알고자 한다.
감성 없이는 어떠한 대상에 대한 인식도 가능하지 않으며, 또한 지성 없이는 어떠한 감성도 파악될 수 없는 상호 의존적 개념이다. 본질은 내가 주관적으로 만들기보다 달리기 내면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사유는 달리기 속에 침잠하여 그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구조에 따르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오늘도 즐겁고 건강한 하루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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