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 영업사원이 진료실에 와서 특정 질환의 치료용 기존 약제의 효과에 대한 만족도나 불편감을 묻거나 최근의 새로운 제품의 효능효과에 대해 설명을 하고 의사가 약제를 사용하겠다거나 거절하는 선택의 피드백(환류)을 주는 것이 일상적인 영업행위, 즉 제약 세일즈의 간단한 과정이다. 마찬가지로 환자가 진료실에 와서 자신의 불편감을 이야기하면 의사는 이야기를 듣거나 질문을 하고 여러가지 진찰을 한 후에 환자에게 피드백(환류)을 해주는 것이 진료의 과정이다.
즉 지금까지는 돈을 매게로 하여 물건이나 생각, 혹은 행위를 사고파는 것이 일반적인 세일즈였지만, 진료행위처럼 시간이나 정보, 열정적 에너지나 헌신적 봉사, 그리고 노력과 신념 같은 지금까지는 사고 파는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개념이나 가치로 측정될 수 있는 모든 서비스에까지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일상 생활 자체가 모두 큰 범주의 세일즈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미용시술과 관련된 비급여 의료행위의 비용을 묻는 환자들에게 떳떳하게 말하지 못해왔다. 의사가 돈에 대해 너무 밝힌다는 느낌을 주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지만, 막상 시술을 거절당할 경우에 내가 가지고 있는 전문가적 자부심이 입을 상처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환자들의 증상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 예기치 못했을 나의 질문에 간혹 당황했을 환자분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요즘은 나도 비급여 의료비용에 대해 아주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편하게 대답해드리려고 하고 있다.
요즘은 오히려 소비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정보가 너무 자세해서 나의 비급여 의료비용이 적절한지 비합리적인지 환자분들이 스스로 검증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진료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전통이라도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 소용이 없듯이 아무리 내가 전문가적 자부심을 가지고 있더라도 환자분들이 오지 않으면 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내가 원하던 아니던 개원 현실도 이미 벌써 세일즈의 영역에 깊이 들어가 있다는 말이다.
소비자들이 정보의 공유화로 스스로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길이 많이 넓어졌지만, 공급자들은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던 세일즈에 대한 위험부담 뿐만 아니라 무한 경쟁이라는 광야에서 적응해야 하는 이중고를 짊어지게 되었다. 그만큼 방어적인 면도 소비자와 공급자가 동등한 관계를 이룬다고 하여 정보의 질적인 수준과 통제능력까지 동등해질 수 없기 때문에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라 불만족의 기회가 더 늘어나는 불리한 점도 많아지게 될 것이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소비자가 호소하는 불편감에서 시작하지만, 그 불편감이 초래하게 된 전인적 평가를 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작년까지 없던 고혈압이나 당뇨가 생겼으면 혈압을 떨어뜨리거나 혈당을 떨어뜨리는 약만 처방할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을 초래하게 된 환자의 생활 환경까지 펑가해서 종합적인 조언을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즉 30년 전의 의사들은 쉽게 이야기 해서 약만 처방하면 되었지만, 요즘의 의사들은 환자가 인터넷을 통해 알 수 있는 정보가 아니라 환자가 전혀 생각하지 않던 생활상의 문제들을 발견하여 조언하고 함께 하는 노력이 더 필요해지고 있다.
나는 환자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어떤 환자분들은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기도 하지만, 나중에 나의 진심을 이해하고 나면(자신에게 해가 가지 않고 도움이 되었다고 알게 되면) 내 말을 잘 따라주게 되고 스스로 더 좋아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질문을 많이 하는 환자를 귀찮아하지 말고, 나 자신도 환자에게 많은 질문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많이 하고, 환자가 인터넷을 통해 알고 있는 방대한 정보들 중에서 정말 필요한 몇 가지를 간단해게 정리해서 전해주려 노력한다.
풀리지 않는 문제와 경쟁, 스트레스와 불안, 강박과 우울 등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정보의 홍수에 빠져 어느 것도 선택하거나 결정하지 못하고 그냥 맥을 놓고 떠내려 가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런 사람들을 가장 쉽게 스스로를 붙잡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것이라도 잡고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리적 허기를 느끼고 그것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꾸고, 갈망하고 있다. 남자들이 요리학원으로 달려가고, 여자분들이 미각의 만족을 위해 맛있는 음식점들을 찾고, 젊은이들이 미용성형을 위해 상담을 받거나 인문학의 힐링 강의장에 모이는 이유도 결국은 한 가지다. 심리적 압박으로부터의 완전 탈출이 아니더라도 일탈을 통한 힐링이다. 문제는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 한, 그런 것을 통해서는 해결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손에 손잡고'가 아니라 '손마다 스마트폰'을 잡고 검색한 정보와 환류(피드백)에 중독된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일부에 불균형하게 편중되었던 정보가 이제 모든 국민들에게 몰라도 되는 것까지 더 많은 정보가 개방되고 있지만, 우리 삶은 행복해지기는 커녕 점점더 어려워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아는 정보를 나만 모르고 있지 않나 하는 불안감과 걱정 때문에 한 시도 맘 편할 순간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가 세계로 뛴다고 해서 내가 사는 동네가 뛰는 것은 아니고, 내가 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그냥 잠원동에서 달리기를 즐기는 의사로 살고 있을 뿐이다. 내가 지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어떤 정보가 가장 필요할 것인가를 찾을 계획을 세우고 쓸모없는 정보들을 통제하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일이 되어야 한다.
오늘도 즐겁고 건강한 휴일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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