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귀절 금강경9-8]9분. 어느 상도 상이 아니다: 주인은 주인임을 내세우지 않는다.
내가 공직을 떠나기로 하는 결정에 중요한 요소가 가족들의 희생 속에 나 혼자만의 성공이나 성취보다는 어릴 적 꿈인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개원초기에는 아이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나는 너희들을 위해 나의 성공까지 버렸는데~!'라는 섭섭함을 토로한 적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면 그 마저도 아직 인생살이에 대한 깨달음이 부족한 탓이었다. '내가 잘났다!'는 공명심이었다.
'내가 자식을 위해 희생했다'는 생각은 '스님들이 절에 오래 있었으니까 수행이 많이 되었다.'는 어리석은 망상과 똑같다. 나의 행동 모두가 무주상보시 같은 희생과 봉사도 많이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헛된 상들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그런 허상들에 집착의 밧줄을 똘똘 돌려매고 있기 때문에 진정으로 희생한 것도 아니고 수행이 된 것도 아니다. 나는 나의 만족과 행복, 그리고 자기 인정을 위해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도 함께 인정받고 만족하고 행복해지게 되는 것이다.
희생이나 봉사라는 개념 자체를 버리고 삶 그 자체게 충실하게 되면서 잘 크는 아이들이 고맙고 멋있고 자랑스러워자면서 도와주려는 마음 자체가 의무감이 아니라 진심으로 우러나는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의사사회에 보면 세상물욕을 놓았다고 자처하면서도 명예심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의사회장을 하면서도 가장 우려하고 조심하는 것이 그런 모습으로 비춰질까 하는 점이다. 내가 조심하며 살고 있다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자체가 조심하는 삶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 금강경의 말씀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는 관념의 상에 끄달리면 외면상 드러나는 어떤 모습의 이면에 여러가지 복잡한 사회적 문제와 의식 구조가 숨겨저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고 뒤돌아봐야 한다.
소형차와 중형차, 국산차와 외제차를 선택하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제 중형차를 선택하고 싶은 욕심이 마음 속에 강하게 일어나지만, 주위의 눈치 때문에 국산소형차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또 경제적 여유는 있지만 종교나 자신의 이상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모두 스스로 적극적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주변을 고려한 결정이며, 부유함에 대한 동경이나 고정관념이 남아 있기 때문에 상황이 바뀌면 당장 선택도 바뀌게 된다. 나는 큰 집과 고급 승용차 등 물질적인 부유함에 대해 아무런 부러움이 없다. '나는 이렇게 검소하게 살고 있다'는 마음 속의 어떤 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불편함이 없는 집과 BMW(버스, 지하철, 걸어가기)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며, 오히려 즐기고 있는데, 그것은 물질적 부에 대한 어떤 동경이나 열등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물질적 부 자체를 잘사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삶 자체를 가장 넉넉한 삶이라 여기게 된다.
졸부근성이라는 말이 있다. 물질적 부에 대한 동경과 열등감을 가진 사람들이 돈을 많이 가지게 될 때 자신이 가진 물질적 부를 그냥 세상에 자랑하고 싶기 때문에 기존의 재벌들은 참으로 부끄러워 아예 생각하지도 못하는 일들을 거리낌없이 하게 되는 것이다. 물질적으로는 가난에서 벗어났지만, 정신이나 의식은 아직 가난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직 아무 깨달음도 못얻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말이다. 진정으로 깨달음을 얻은 이는 깨달음을 얻고 못얻고의 생각조차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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