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에도 깨달음을 얻으려면 용맹 정진해야 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여야 한다. 그래야만 부처가 될 수 있다. 달리기에도 똑같다. 더 빨리 달릴수록 더 먼저 도달할 수 있다. 훈련이 적절히 될수록 보폭이 넓어지고, 보폭이 넓을수록 속도가 빨라지고, 속도가 빨라질수록 더 큰 힘으로 더 먼저 도달할 수 있다.
오직 화두만을 붙들고 똑바로 나가야 한다. 항상 앉아 있을 뿐 눕지 않고(長坐不臥), 더러운 누더기 조각으로 만든 분소의(糞掃衣)를 입고,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며, 문 없는 무문관(無門關)에서 화두와 피터지게 싸워야 해탈을 얻을 수 있다. 아무리 화두를 붙들고 매달려도 망상은 틈을 비집고 집요하게 피어오른다. 잠은 천근만근의 무게로 쏟아지고, 세상에 대한 그리움은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온다.
달리기도 그렇다. 힘차게 달려온 전방 추진 운동에너지가 하나도 빠짐없이 두 발바닥에 모두 실려 지면을 뒤로 밀어내는데 사용되는 것이다. 일부 운동에너지는 부정확한 착지, 흔들리는 상체, 바람직하지 않는 자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실될 수 밖에 없지만, 자세와 무게 중심의 높이, 그리고 속도가 조화를 이루어야 불필요한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다.
화두는 바람이다.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사라진다. 망상은 바람이다. 틈만 나면 화두를 지운다. 차가 나가지 않을 때 차를 찬다고 될 일이 아니다. 엔진에 문제가 있으면 엔진을 고쳐야 하고, 바퀴에 문제가 있으면 바퀴를 바꾸어야 한다. 망상에 의지해 깨달음으로 갈 수는 없다. 멋진 색상의 그림도 원래는 물감이다. 물감에는 원래 그림이 없다. 그리는 사람의 뜻에 따라 각양각색의 모양과 이미지가 생겼을 뿐이다. 명주실에는 무늬가 없다. 짜는 사람의 뜻에 따라 무늬가 생겼을 뿐이다. 풀어버리는 다시 각양갹색의 물감으로 돌아간다. 물감은 본성이고 그림은 망상이다. 물감을 기억하라. 본성을 기억하라. 화두를 놓치지 말라.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 화두를 놓치는 순간 깨달음의 길이 사라지듯, 두 발로 땅을 올바르게 힘차게 밟지 않으면 한 순간에 넘어질 수도 이다. 전속력으로 달려온 전방추진 수평 운동에너지는 발이 지면에 가까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지면으로 옮겨진다. 허벅지를 높이 들었다가 앞으로 내뻗은 다리가 점차 아래로 내려지면 발바닥이 지면을 향한다.
화두만 잡고 있으면 모두 부처가 되는가. 기왓장을 천년만년 돌에 갈면 거울이 되는가. 깨달음은 단박에 이뤄진다. 깨달음의 길은 계단식이 아니다. 홀연히 도둑처럼 온다(頓悟 돈오). 밥 먹다가, 밭에서 일하다가, 똥 누다가 “아항,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친다. 그러나 산 정상에 올랐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정상은 반환점에 불과하다. 올라 온 만큼 다시 내려가야 한다. 에베레스트에 오른 산악인들은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히말라야 최고봉에 오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막상 정상에 서면 ‘더 이상 가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안도감부터 든다. ‘드디어 해냈구나’하는 뿌듯함은 한순간 일뿐이다. 그것보다는 ‘자, 이제 어떻게 내려가지?’ 하는 두려움이 밀려들기 시작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그렇다. 단박에 깨우쳤다고 해서 그것으로 깨달음을 얻은 게 아니다. 한발 더 나가야 한다. 마라톤 벽에 막혀 도저히 도저히 나갈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억지로 한발 더 나가야 한다. 과연 마라톤 벽 앞에서 어떻게 하면 한발 더 내디딜 수 있겠는가(百尺竿頭 如何進步백적간두 여하진보). 오호라, 한발 더 내디디면 천길 낭떠러지 허공뿐인데…. 하지만 그런 생각조차 버려라. 허공에 자기를 던져 버려라. 깨친 것조차 다 내던져 버려라. 깨우쳤다고 생각한 순간, 비로소 새로운 길이 시작되는 터닝 포인트일 뿐이다. 전방 추진 수평 운동에너지를 흡수한 지면의 반발력이 주자를 앞으로 밀어낸다. 주자는 자신의 다리를 오리발의 물갈퀴처럼 후방으로 내뻗음으로써 전방 이동 동작을 강화하게 된다.
한번 깨달으면 그 경지는 죽을 때 까지 영원히 계속되는가. 아니다. 잠시라도 쉬면 거울에 먼지가 쌓인다. 거울은 쉬지 않고 닦아줘야 빛이 난다(漸修 점수). 큰 스님들이 모든 것 훌훌 털고 무소유의 삶을 사는 이유다. 더 낮은 곳으로, 저잣거리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갓 난 송아지가 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듯 무심하게 그냥 물 흐르듯 산다. 깨달음은 결코 계급장이 아니다. 대상이 오면 비춰주고, 또 대상이 가면 흔적을 지우는 여여(如如)한 거울 같은 것이다. 중생의 마음은 창호지 같다. 먹물이 한 방울 떨어지면 지워지지 않고 번진다.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것보다는 내려오는 게 훨씬 더 힘들다. 사고는 대부분 하산 길에 일어난다. 수 없이 많은 위대한 산악인들이 하산 길에 목숨을 잃었다. 장대로 바를 넘었다고 마음을 놓는 순간, 바가 몸에 걸려 떨어진다. 두둥실 떠올라 깨달음의 경지에 올랐다고 환호하는 순간 장대가 똥침을 놓는다. 96년 에베레스트 정상을 단독 등반한 뒤 정상부터 스키 활강으로 내려온 한스 카멀란더는 말한다. “등산은 스포츠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심판도 없고 관중도 없다. 오로지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무상(無償)의 행위다. (…) 등산은 물결이 만들어 내는 파장과도 같다. 오름과 내림, 높고 낮음이 끝없이 이어진다. 내리막의 힘을 받아야만 비로소 다시 오를 수 있다. 8000m가 넘는 산을 오르는 길에서 정상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전환점이고 전체 과정의 중간 단계일 뿐이다. 정상에 올랐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성취는 산 아래로 내려왔을 때에야 비로소 이뤄진다.”
주자가 한번 마라톤 대회를 완주하면 그는 이미 출발하기 전의 그가 아니다. 그는 새로 태어난 사람이다. ‘거듭난 사람’이다. 설령 그가 실패했을지라도 그는 주자의 발걸음의 그 숨 막히는 떨림을 맛본 사람이다. 어차피 이 세상에서 살아 탈출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나 꿈을 꾸면, 날갯짓을 하면 살아 탈출할 수 있다. 흔히 혼자 꾸면 꿈이지만 여럿이 꾸면 현실이 된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 아니다. 꿈은 혼자 꿀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꿈이다. 깨달음은 누가 대신 해줄 수 없다. 부처가 되는 것은 각자 자기 안에 있는 부처를 찾는 것이다.
꽃이 피고 잎이 진다. 꽃과 잎은 둘이지만 그 뿌리는 원래 하나다. 뿌리는 꽃을 피워 내 뿌듯하고 꽃은 씨앗을 맺어 뿌리를 만든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그러나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라고 한번 의심하고 뒤집어 봐야 비로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 된다. 두둥실 떠오르다가 추락해봐야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땅이 ‘꽃자리’임을 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내려와 봐야 지금 내가 딛고 서 있는 땅이 가장 높은 곳임을 안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에서 일어나라. 정말 우습구나. 소를 타고, 소를 찾는 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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