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하고 숨가쁜 포옹 속에서 상대를 또렷이 본다면 환상이 깨질 수도 있기 때문에 연인들은 열정이 죽지 않도록 눈을 감는다는 말이 있다. 사랑은 맹목적이라는 말이 그래서 틀리지 않는다고들 이야기하곤 했다.
그래서 자크 라캉은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사랑에서 우리는 가지지 않은 것을 주고, 또는 주겠다고 약속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들이 가지지 않은 것을 구하고 또 본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상대의 결여를 덮기 위해 환상을 만들어 낸다.
그러다 그 환상이 무너질 때 사랑에서 빠져 나오거나 사랑을 증오로 대체한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증오 또한 우리가 눈감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가끔 이런 과정들 때문에 우리와 증오의 대상 사이에 있는 유사성을 보지 못하기도 한다.
사랑에 빠져 나오면서 바로 상대를 미워하기 시작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우리가 애초에 상대에게 끌렸던 바로 그 점이 짜증의 이유가 되고, 마침내 그것을 더는 견딜 수 없게 되고 마는 점진적 과정이다.
젊을 때 어떤 여자와 사랑에 빠질 때는 그 여자가 커피잔을 천천히 들어올려 입술로 가져가 홀짝이는 과정이 너무 숭고하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몸짓을 관찰하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하고 강력한 욕망을 느낀다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 로맨틱한 사랑도 거기서 빠져나올 때는 똑같은 몸짓이 견딜 수 없는 모습이 되었다. 로맨스의 출발점에서는 행복감을 일으키던 것이 끝에는 오로지 혐오만 일으켜, 두 눈을 감고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사랑은 종종 상대의 이미지를 이상화하지만 동시에 상징적 인정과도 연결된다. 예를 들어 중요한 기념일을 축하하거나 교량에 사랑의 자물쇠를 채우거나 헌신의 궁극적 상징으로 결혼반지를 교환하는 행동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알리고 싶어 할 수도 있다.
반대로 증오의 경우에는 한때 애정을 불러일으켰던 상대의 외모와 특질이 그를 악마로 만들거나 비인간화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다. 사회관계망에는 그런 이미지들, 즉 이런저런 이유로 인기를 잃게 된 정치인이나 유명 인사의 흉한 사진들도 도배된다.
사랑과 증오에는 어떤 사람에게서 파악할 수 없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따라서 어떤 말이나 이미지로 그것을 압축하든지 간에 그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데는 아무런 합리적 이유가 없다.
그것은 그냥 두 감정이 모두 무지와 조건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이 감정의 대상에 관해 너무 많이 아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전략이 없다면 두 감정 모두 존재할 수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무시하거나 무시당하는 것도 그 나름의 역할을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분노와 강한 반감을 느끼는 반면, 또 어떤 사람은 상대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 사랑의 감정이 더 강해지기도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대에게서 반드시 응답을 듣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입을 다물고 있는 시간이 길수록 사랑이 더 오래 살아남았던 경험들도 분명하다. 사랑이 중오로 바뀌거나 증오가 사랑으로 바뀌는 것은 오직 두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게 만드는 무지의 상황과 조건 그 자체 때문이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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