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을 사랑하고, 내가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자연이 설사 내 목숨을 가져간다 해도 내 마음은 전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대학생활 초기 온 세상을 호기롭게만 바라보며 본격적으로 산엘 다녔을 때다.
산을 오르며 꽃과 풀과 계곡과 능선을 구경하고 산딸기와 다래를 따먹고, 넓고 넓은 자연을 바라보며 나의 능력의 무한함을 감격하던 때였다.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하면 된다(candoism)"의 일종인 '자신교(自信敎)'의 교주였던 시절이었다.
건강은 실내에서 가공하여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자연을 느끼며 움직일 때 제대로 만들어진다는 신념도 그 때 생겼다. 자연식품과 운동이 전체적인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녹차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그 때였다.
그런 신념의 결과였겠지만, 실내나 제한된 장소에서 하는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여건만 되면 산속을 달리고 오르고 하는 것이 최고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연주의 운동이 더 크게 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지난 삶을 되돌아볼 때 내 인생 여정 전체에 퍼져있던 열정과 헌신, 부지런함과 성취의 기쁨들을 발견한다. 내가 생각하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요즘도 그 시절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누구냐고 물어보면, 내가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알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아마도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불타는 능동적인 열정과 사명감에 꽉차 있던 나를 특이하게 바라봤을 것이다.
산이 능선이나 계곡만의 것이 아니고 강이 강둑만의 것이 아니듯, 내 인생이지만 나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나와 함께 자신들의 삶의 일정 기간을 살았던 사람들의 수많은 고뇌와 참여와 희생의 덕분이었음을 알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바쁘게 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이웃의 삶에도 눈길을 줄 수 없었으며, 심지어 한 집에 사는 내 가족들에게 그런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외형적인 삶이 멋지고 성공적인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 눈에 비춰졌다.
바쁜 삶은 겉보기에는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내면을 다스리고 내실을 다지는 일에는 서투르기 마련이다. 제대로 된 입맛을 훈련시키기보다 먹고 싶은 음식은 제한 없이 마음껏 먹는 것이 잘 먹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식이다.
행복이나 가치있는 삶은 여유를 가지고 돌아볼 때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당장 몸과 마음이 편한 삶은 몸에 나쁜 독약을 먹는 거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 한번 얼굴들 보고 정과 사랑을 나누며 건강과 여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삶이 되어야 한다.
오늘도 즐겁고 건강한 하루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