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귀절 금강경14-4]제14분. 상을 떠나 고요함에 이르라: 놀라지도 두려워하지도 겁내지도 말자.
믿는 마음이 청정함은 일체의 분별지를 끊고 있다는 말이며, 털끝 만큼도 자기 생각에 근거한 의심도 갖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꿈을 깨면 악몽을 꾸며 괴로워하던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반짝이는 한낮의 밝고 따뜻한 햇살이 있는 줄도 모르고 어둠 속에서 랜턴이 좋으니 촛불이 좋으니 다투며 살지 말자.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오면 그곳은 지난 시절의 번뇌가 참으로 우스울 만큼 밝고도 따뜻한 햇살이 온 몸의 긴장을 풀어줄 것이다.
베풀지만 본래가 내 것이 아니므로 베풀었다는 생각이 조금도 있지 않는 삶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살의 모습이다. 만약 그렇게 이름을 붙인다면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진실하게 있는 그대로 보면 곧 실상이지만, 실상이란 어떤 것이 실상이라고 고정할 수 없는 것이다. 실상을 본다고 해서 어떤 모양을 그리지 말라는 말이다. 다만 우리가 정할 수 없는 이 세계의 진실한 모든 모습들을 가리켜 실상이라 이름 붙이고 있음에 불과하다는 도리를 잊지 말자.
물이 뜨거워지면 수증기가 되어 공기 중으로 날아가고 기온이 떨어져 영하가 되면 물은 얼어서 얼음이 된다. 그 어느 때를 가리켜 이것이 물의 실상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액체 상태의 물만을 물이라 한다면 얼음이나 수증기는 물이 아닌 것이어야 하는데, 이들은 모두 동일한 분자식을 가지고 있어서 실상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실상이 어떤 것이라는 의심을 내면 다시 또 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시비분별을 끊어 아집을 타파하고, 그로 인해 번뇌가 사라졌다 해도 다시 실상이란 상에 이끌리면 법집에 빠지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법집에 빠지면 아집에 다시 빠진 것이나 똑같다.
금강경이 최고다, 불교가 최고다, 이 스님이 최고다 등의 현실의 법집들이 수없이 많다. 금강경은 이런 법집들을 버리라고 한다. 그것은 실상이란 형상에 다시 덜미를 잡히고 있는 것이니 그 실상 또한 이름에 불과한 것임을 깨우쳐야 한다. 비록 아집은 버렸더라도 법집이 강하면 분별지는 더욱더 상승하게 된다. 아집이나 법집은 똑같은 것이며, 일체의 상을 떠난 이는 진실한 마음의 문이 이미 열려있기 때문에, 어떤 세상이나 환경에서도 항시 수행정진하고 있다면 깨달음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어둠이란 본래 없는 것, 그처럼 무명의 실체란 것도 없다. 그래서 잘 나고 못 나고의 상이란 본래 없다. 있는 그대로의 나와 똑같은 존재일 뿐이다.
한강둔치를 달리면서 바라보는 한강의 유유한 흐름을 들여다 보면 높은 하늘, 유유자적한 구름, 한 줄기의 바람, 그 어떤 것도 내 손에 잡을 수 있는 것이 없지만, 태풍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강물의 흐름을 뒤흔들어도 실상이 없는 것이기에 바람이 그치면 다시 유유한 흐름을 계속하는 것이 강물의 모습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꿈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이슬과 같고, 번개같은 것이다. 매사 하나라도 더 가지려 하고, 집과 지위와 명예를 잃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 하는 사람이 이 모든 형상을 떠날 수 있는 믿음이 있다면 이미 도의 반 정도는 이룬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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