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 의사가 되길 원한 적이 없다. 그냥 어머니를 모시고 효도하며 살아가는 농부나 막 개발되기 시작하던 산업화에 따라 울산에 들어서기 시작하던 공장들에 취직하여 살면서 깊은 산골 우리 동네를 위해 무언가 봉사하는 삶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꿈꾸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그저 현실에 충실하며 이미 정해져 있는 환경적 계획에 따라 운명의 삶을 사는 것뿐이었다. 장남인 형은 집안 중흥을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지만, 나와 동생들은 이미 정해진 길을 벗어날 가능성은 어디에도 없었다.
유난히 소심하고 수줍음이 많던 나는 단 한 번도 이런 분위기에 의문을 품어보지 않았고 그런 규칙을 어긴 적도 없었다. 형에 대한 부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나의 삶을 전통적인 순리에서 변화하게 할 만큼 강하지도 않았다.
가슴을 뛰게 하는 흥분이나 변화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농사일을 열심히 하셔서 주위에서 신망을 얻고 계시는 아버지의 삶이 나의 절대적인 역할 모델이었다. 그 시절에는 아버지에게 삶이나 인생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만약 "인생이 뭔가요?"라거나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던졌다면 "이놈아,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가서 나무나 한 짐 해와라!"라는 엄청난 비웃음만 되돌아왔을지도 모를 뿐이었다. 산에 가서 나무 한 짐 하는 사이에 진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인생인 줄은 그 때는 몰랐다.
담담한 무채색의 꿈 없던 그 시절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시절 서서히 시작되던 새마을 운동이나 4H활동 등 국민정신개조 운동의 본질을 서서히 깨닫고 열린 인생에 대한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독립심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절대로 꿈을 포기하지 말아야하겠구나라는 자각이 생겼다.
전통적이고 구속적인 문화 속에 나를 가둬두기는 나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너무 자유롭고 열정적임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어쩌다가 부산으로 고등학교를 유학가게 되면서 자연스런 탈출구가 만들어졌다.
나에 대한 어머님의 기대 수준은 아주 낮았지만 교육열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덕분에 돈 드는 부산유학생활도 가능했고, 덕분에 의과대학에도 가게 되었고, 두 동생들을 부산으로 데라고 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는 낮은 자존감 때문에 소극적인 삶과 불행감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지만, 의과대학에 입학하면서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회복하고 나의 존재에 대한 당당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과 새로운 삶을 시작할 최선의 선택지들이 다양하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 최대의 축복이었다. 실패한 국내에서 최고의 간외과의사가 되자는 꿈도 그 때 생겼다. 나의 환경이 내 꿈을 이루는데 걸림들이 될 수도 있었지만, 꿈과 가능성을 시험받는 삶을 즐기게 되었다.
오늘도 즐겁고 건강한 하루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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