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귀절 금강경14-6]제14분. 상을 떠나 고요함에 이르라: 해도 했다는 생각을 없애라
'내가 옳다'는 생각은 구체적인 형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그런 마음의 움직임을 이름하여 '나라는 형상' 즉 '아상'이라 부를 뿐이다. 착하다거나 선하다는 말은 착하고 선한 어떤 구체적으로 정형화된 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착하고 선한 가치가 있는 것, 즉 '가치 그 자체'를 착하고 선하다고 부를 뿐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다. 사상(四相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벗어나 일체의 상을 떠난 사람은 진실한 마음의 문이 이미 열려있는 것이다. 그런 탓에 제일바라밀이라는 것 또한 그 바라밀이란 형상에 집착하면 그 즉시로 바라밀의 공덕은 사라지며, 그 본연의 의미 또한 변질되어 버린다.
바라밀을 도깨비 방망이 정도로 오해하지 말라는 말이다. 반야바라밀을 암송한다고 병이 낫거나 재물이 생기거나 갑자기 복이 터지는 것도 아니다. 아니 그럴 리는 만무한 일이다. 오로지 그 이름이 제일바라밀이라는 사실을 통찰할 때 제일바라밀의 실천이 시작될 것이다. '라이언킹' 영화를 보다가 삼촌이 라이언의 아버지인 부상당한 현재의 왕을 언덕에서 밀어뜨려 죽이는 것을 보고 원준이가 "왜 삼촌이 아버지를 죽였어?"라고 질문했지. 그런데 우리는 그런 원준이가 기특하기도 하고 웃습기도 했지. 우리는 왜 그런 삼촌이 아버지를 죽이는 그런 말도 돼지 않는 일을 보고도 원준이와 같은 의문이나 격한 감정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 죽은 부상당한 왕이 '내'가 아니며 나의 진면목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아무런 원한심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라고 집착하는 나의 육신의 작은 아픔에는 펄쩍 뛰거나 다른 사람들에 의해 당하는 무시감이나 왕따에는 쉽게 원망심을 품기도 한다. 부처님은 과거의 인욕선인이었을 때 자신의 육신이 잘려나갔지만, 그 육신에 '나'라는 생각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에 고통을 받아들일 뿐 억울함도, 원망심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치다. 생노병사의 괴로움 또한 똑같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받아들이는 일만 있을 뿐 달리 할 일이 없다는 말이다. 고통이 있으면 아 아프구나 하면서 받아들이면 될 뿐 다른 누구를 원망하거나 성내거나 괴롭히지는 말아야한다. 죽을 때라 하면 그냥 죽음을 받아들이면 된다. 본래 죽음은 없다. 죽는 꿈을 꿀 뿐.... 아무리 고통스럽게 참는다 하더라도 그것도 한갖 꿈과 같이 허망한 것일 뿐 실체는 없다. 그냥 인욕이라는 이름만 있을 뿐이므로 인욕을 실천한다 하여도 자랑할 것도 없고 대단하다 할 것도 없다.
지계(持戒)는 계를 지키다는 뜻인데, 부처님은 공을 기반으로 모든 것을 설하시지만 그렇다고 공에 매여있지도 않았다. 만약 공에 빠지면 그것도 병이다. 즉 공(空)에 빠지면, 공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공에 집착한 것이다. 색에 집착하여 존재가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하여 공을 설하시고 공에 집착하여 모든 것은 공이라고 거기에 집착하여 아무 일도 안하는 사람을 위하여 계율을 설하셨고 각종 수행 종류를 설하셨단다. 색과 공을 잘 이해 하려면 살아있는 이대로 곧 공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대로 색이면서 동시에 공이다. 꿈 속에서 모든 일은 사실처럼 여겨지나 사실은 꿈이지. 즉 공이지. 공에서 만든 세계지. 그런데 꿈 속의 사람은 실제로 고통이 있고 어떤 모습이 있기 때문에 공이면서 동시에 색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공이 변하여 만물이 되었으나 만물은 생주이멸하고 있는 어떤 존재들이지. 그러므로 자기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 움직이지 않고 일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공에 떨어진 병자라는 말이지. 몸을 가지고 있으니 몸은 부지런히 일하고 마음은 항상 무심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바르게 사는 것이다. 수행을 하더라도 했다던지 하고 있다는 생각이 조금도 없어야 하는데, 그냥 살아가는 그 자체가 수행이기 때문이다. 결국 화장실에서 큰 일 보는 것과 똑같다. 안가고 살 수 없으니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화장실 갔다왔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으로 있기 때문에 필요한 수행이기 때문에, 분명히 하되 했다는 생각은 내지 마라는 말이지. 무엇을 정하면 꼭 거기 집착하는 경향이 있지. 지키되 못지켰다고 그 사람 미워할 만큼의 큰 일은 아니다. 만약 지키지 못한 사람 미워하면 자기가 오히려 더큰 죄를 짓는 줄 알아야 한다. 꼭 지켜야 하는 법일 뿐이지 그것이 생명을 내걸고 남을 미워할 정도의 큰 죄는 아니다. 그래서 해도 했다는 생각이 없으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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