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귀절 금강경18-4]제18분. 일체를 하나로 보라: 신통력은 능력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몹시 화를 낸다면,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의 실지 마음은 나를 너무 좋아하고 아끼는데 내가 자기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화를 내는 이유가 그런 것이다. 외모는 우락부락 거칠어 보이는 사람도 마음은 순한 양처럼 따뜻하고 배려심이 깊고 건실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눈과 귀, 코와 입, 혹은 촉감으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부분으로 오로지 머리 속의 뇌에서 얻는 직감으로 알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절에 가서 법당에서 삼배로 예의를 갖추는 부처님에게도 우리와 같은 육신이 있는가? 절대자의 신통력으로 세상만사를 알고 행하신 분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눈과귀, 코와 입, 몸과 영혼을 가지고 살아가며 느끼고 생각했던 분이다.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느끼거나 받아들이는 기능이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기본적인 구조는 똑같다. 부처님도 우리와 신체구조와 살아가는 방식에는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똑같은 오감의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통해 정보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겠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잘못 파악할 수 있다. 촉감이나 맛에 예민한 사람도 있고, 냄새나 소리를 정확하게 구별하는 사람이 있고, 눈으로 보는 정보를 올바르게 판단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부처님께서는 가장 뛰어난 육감을 활용하신 분일 뿐이다.
사람은 동물적인 오감이 고도로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인류로서 뇌의 기능이 고도화되어 외부의 정보축적을 토대로 강화되어 있다. 경험과 훈련을 통해 뇌파의 기능과 직관력을 고도로 단련하면 보통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된다. 관세음보살은 천수(千手) 천안(千眼), 즉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진 듯 신통이 열려 있다는 말이다.
신통력은 마음에 걸림이 없고 번뇌가 없는 것과 전혀 성격이 다르다. 내가 모르고, 내가 갖고 있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신통'에 마음이 팔리는 것, 그래서 다섯 가지 신통에 매달리고 의지하며 신격화하는 일들이 세상에 수없이 많다. 부처님께서는 이 신통의 길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과 전혀 다르며, 성격이 세속적인 데에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