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 성 일 : 2014.09.21 + 작 성 자 : 관리자
+ 제     목 : [5귀절 금강경18-11]제18분. 일체를 하나로 보라: 마음에는 형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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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귀절 금강경18-11]제18분. 일체를 하나로 보라: 마음에는 형체가 없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다면, 그 남은 시간들 때문에 불행할까? 일정시간 밖에 못산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당연히 괴롭고 불행할 것이다. 자기 자신의 생각이 스스로를 괴롭혀서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갈 사람은 가고 있을 사람은 즐기자'는 말처럼,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가야한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갈 시간이 얼마 남았는지 알게 된 사실만도 고맙게 생각하고 못다한 일을 마무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더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일이다. 내일 일을 몰라서 오늘이 즐거운 것이 아니라 내일 일어날 일에 스스로 사로잡히지 않기 때문에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컵에 물이 반 밖에 남지 않았다'고 울상을 짓는 사람과 '아직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안도하는 사람과의 차이는 엄청날 것이다. 생각 하나로 절망할 수도 있고 기뻐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살이의 매력이다. 내 생각에 따라 괴롭기도 하고 즐겁고 행복하기도 한 것이지, 인생 자체가 괴로운 인생이 있고 즐거운 인생이 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일을 잊어버리는 것은 마음의 문제고, 미래를 수용하는 것은 태도의 문제라는 말이 있다. 과거의 괴로움을 잊지 못하고 그것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만큼 현재의 인생도 괴롭고, 거듭 거듭 생각을 짓다보면 업이 되고, 업이 쌓이면 점점더 괴로움이 많이 만들어진다.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현재의 나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더 이상 미치지 못한다. 괴로움은 스스로 괴로움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는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거기에는 아무런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형상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괴로움이라 생각하는 허상을 마치 실체가 있는 것으로 내 생각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현재의 마음이라는 것도 똑같이 하나의 허상일 뿐이다. 허망한 마음의 실체가 따로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어떤 환영 속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이다.

희로애락의 다양한 마음들이 한결같이 허망한 마음이고, 이것이 본래의 마음이 아닌 줄 알면 그것을 이름하여 참마음이라 한다. 만약 형체로 마음을 볼 수 있다면 마음의 종류와 형상을 배우고 익히는 데만도 수십 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마음은 형체가 없기 때문에 형체를 보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근원을 보아 아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눈을 가지고 사람을 보면서도 일체 중생의 마음을 한번에 다 볼 수 있게 된다는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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