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귀절 금강경17-12]제17분.궁극의 경지에는 아상이 없다: 진실함도 허망함도 없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
부처님의 법은 진실함도 없고 허망함도 없다. 세상에 깨끗함이 있고 더러움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 마음 속의 분별 망상 때문이다. 마음 속에서 이런 분별 망상을 끊어 버리면 더럽다고 버리거나 깨끗하다고 취할 것도 없이 그 자체로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된다. 그 자체로 청정하다고 한다. 불교에서 청정하다는 말의 의미는 더러움에 대비되는 관념이 아니라 더럽거나 깨끗함에 대한 분별이 끊어진 상태를 이름하여 '청정'이라 한다. 이것은 허망하고 저것은 진실하며, 이것은 깨끗하고 저것은 더럽고, 이것은 법이고 저것은 법이 아니라는 분별망상이 있기 때문에 살면서 시비가 사라지지 않는다.
'일체 법이 모두 불법'이라는 부처님 말씀은 이런 세상살이의 시시비비를 떠나 모든 것이 다 불교의 진리하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이 그대로 진실이다. 존재하는 현상을 분별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때 내 마음의 평정은 고요한 호수처럼 흐트러지지 않는다. 괴로운 사람은 괴로운 대로, 화내는 사람은 화내는 대로, 웃는 사람은 웃은 그대로가 진실이다. 원준이가 유치원 버스에서 형들이 이름이 원숭이와 비슷하다고 원준이를 '원숭이'라고 놀리는 일이 있었다. 선생님이 형들을 나무라서 버스 속에서는 참고 있다가 내리면서 엄마를 보자 서러움에 울음이 터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할머니가 위로한다고 '원준아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야!"라고 말했는데, "그래도 내 마음이 안그런데, 어떻게 괜찮아?"라고 한 말에 제여사께서 버엉~ 쪄버렸던 일도 똑같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먼저 인정해주고, '그래 형들이 놀려서 원준이가 마음이 상하고 슬펐겠구나!'라며 감정을 인정하고 동감을 표한 후에 여차 저차 하니 그냥 참고 넘어가도 된다고 위로와 격려를 해주어야 하는 이유다.
수많은 풀과 꽃과 나무들이 제각각의 자태나 모습들로 만들어내는 한강둔치 공원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시비하고 분별할 일이 무엇이 있겠나. 우리 삶도 똑같다. 크다거나 작다고 뽑아버리고, 색깔이 마음에 안든다고 뽑아버리고, 냄새가 안좋다고 뽑아버리고, 예쁘지 않다고 뽑아버린다면, 즉 나의 분별 때문에 여러가지 복잡한 일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마음에 요동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긍정해야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연의 풍경이 인공정원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이유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무조건 잘했다고 생각하라는 말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술 마시고 실수를 했다면 그 사실의 옳고 그름을 떠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먼저 인정하고 나면 사과할 일은 자연스럽게 사과하게 된다.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시시비비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나 자신도 걷잡을 수 없는 괴로움에 빠지게 된다. 일어난 사실을 최대한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피고 인정할 줄 알 때 진실의 눈이 뜨이게 된다. 사실은 일어난 그대로의 실상이며, 진실이라 함은 나름대로의 주관적인 가치와 판단, 심지어 집착의 찌꺼기까지 교묘하게 섞이게 되는 점을 이해하자. 내 고집을 진실이란 이름으로 시비히고 분별하는 한은 영원히 대상의 마음 가까이에 갈 수 없으며, 법의 실상에 있어서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사람마다, 관점에 따라 다 다르다. 일정한 조건과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떤 업이 표출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것을 인정해야 일어난 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술 먹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실수의 시시비비에만 집중하게 되면, 내가 설정한 '진실'이라는 이름의 고집을 휘둘러대기부터 하게 된다. 이래서는 나도 다치고 상대도 다치게 된다. 이것이 인생살이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전도몽상이 만드는 현실의 고달픔이다. 술을 마시고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살피고 인정하면서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내 주관과는 전혀 다른 객관적인 세계가 눈에 들어온다.
|
다음글 : 
이전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