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귀절 금강경17-13]제17분.궁극의 경지에는 아상이 없다: 여래는 제법이 여의하다
여래라고 하는 것은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어떤 존재가 아니다. 제법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다 뜻과 같다. 즉 '있는 그대로'라는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어떤 '고정된 상'이 없다. 거기에는 '옳다 그르다'하는 상이 없고, '크다 작다'하는 상이 없고, '더럽다 깨끗하다'하는 상도 없고, '높다 낮다'하는 상도 없다. 즉 두 가지 모양이 없다.
그래서 법성게에서 ‘법성원융무이상’ 법의 성품은 둥글고 두루하여 두 가지 모양이 없다. ‘제법부동본래적’ 모든 법은 움직이지 아니하여, 본래로 부터 고요하도다. 모든 법이 다 공하다는 말이다. 모든 법은 다 '나' 혹은 ‘아’라고 하는 상이 없다. 깨끗하니 더럽니 하는 어떤 실체도 없다는 말이다. 깨끗하고 더러운 것이 있어야 더러운 것을 버리고 깨끗한 것을 취하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만드는 어떤 애씀이 필요하다. 어떤 ‘오고 감’이 필요해진다.
본래부터 깨끗함도 더러움도 없으니, 더러움을 버리고 깨끗한 것을 취할 것도 없고,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만들 필요도 없다. 그러니까 아무런 할 일이 없다. 함이 없다. 오고갈 것이 없다. 그래서 여래라고 한다. 제법이 공함을 깨쳐야 바로 여래라고 한다. 올 것도 없고 갈 것도 없다. 버릴 것도 없고 취할 것도 없는, 그런 세계가 바로 깨달음의 세계이다. 내가 보살이니까 남편이 문제가 있지만 잘 받들어 모시고, 아이는 골치가 많이 아프지만 참고 잘 보살히고 선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면, 그냥 내게 맡겨진 일을 잘 하고 있는 것이지 보살이라거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 하지 않는다. 할 일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마음을 돌이켜서, 남편을, 자식을, 부모를 보면서 그들의 아픔을 덜어주고,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그들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이 있으면 사실 우리는 특별히 애쓰고 할 일이 없다. 나의 색깔로 칠한 안경을 끼고 ‘아이가 문제가 있다’고 단정을 짓고, 그것을 뜯어 고치려하니 갖가지로 노력해도 어렵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나만의 안경을 내 스스로 벗어 버리면, 아이는 본래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애쓸 일도 없다. 남편도, 부모도 그렇지가 않다. 다만 물이 필요하다 하면 물을 주고, 밥이 필요하다 하면 밥을 주면 될 뿐이다. 내가 아이들을 키웠다고 하지만, 실제는 내가 해준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자기들이 본래부터 그렇게 고요하기 때문이다.
여래는 제법이 다 공함을 깨달은 자다. 그러니 일체 세계가 그대로 본래 그대로 청정하다. 그럴 때 사람들이 말하여, 여래가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 이렇게 말한다. 본인이 뭔가 얻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눈을 돌려 다른 사람이라 생각해왔거나 미워하고 원망하고, 갖가지 불평, 불만을 가져 왔던 사람들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을 내게 되면, 즉 그들을 향한 생각을 돌이키게 되면, 그들이 본래 아무런 잘잘못이 없는 그냥 그대로의 한 존재임을 바라보게 되면,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바에 따라서 우리가 쓰이고 있으면, 그럴때 세상 사람들이 보고, 아이고 도인이 다 되었다. 아 보살이구나. 하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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