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지금의 내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인생을 시작했다면 아마도 아무 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인생은 처음부터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시작은 비록 미미했으나 작은 선택의 순간들마다 최선을 다한 결과들이 하나하나 축적되어 현재로 이어졌다고 해야 옳다.
실질적 인생이 시작된 고등학교 학생일 때, 나는 시골에서 갓 부산으로 유학온 어리버리한 촌놈이었을 뿐이었다.진짜 우수한 학생으로 경쟁의 세상에서 살아남아 성공의 길로 달려가기 전에 잠시 고향으로 돌아가 숨을 고르고 싶었다.
꽉 짜인 시간표와 갈 데 없는 갇힌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푸른 하늘 아래 구수한 흙냄새를 믿으며 개구리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주말마다 시골로 올라가 논과 밭, 산으로 돌아다녔다. 자라는 농작물들을 바라보면 내 삶이 그렇게 뻗어갈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공부보다는 농사에 대해 아는 것이 더 많았으며, 그래서 논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더 마음이 편했다. 공부는 항상 일종의 단기 속성코스였다. 낮에는 교실에서 담당과목 선생님들께 배우고 저녁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혼자서 외우고 또 외우기를 반복했다.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교과서의 핵심내용들을 설명해주었지만, 문제를 푸는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아는지는 시험 성적으로 나타났다. 단과반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이 그 때만큼 부러운 적이 없었다.
나는 책방에 들러 문제집과 참고서를 사서 나 혼자 외우고 푸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주말마다 시골에 와서 농사를 짓는 어머니를 도와 일을 하면서 농작물들이 싹트고 자라고 열매맺는 과정을 바라보며 나의 미래, 내 삶의 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학교에서의 빵빵한 친구들을 바라보며 나 자신의 힘 없고 약한 상황을 걱정하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도서관의 책읽기에 몰입하기도 했다. 참고서 빼고 도서관에 비치된 책들을 한 권씩 섭렵하는 일이다. 그나마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의 시간때우기식 독서와 달리 글의 앞뒤 문맥을 이해하며 읽게 된 것이 발전이었다.
생활은 단조롭고 무척 만족스러웠지만, 하숙과 자취를 번갈아 가며 하는 어려운 환경이 다른 것을 고민할 겨를을 없애주었다. 그런 생활도 나름 재미있었다. 내 머리 속을 가득채우고 있었던 꿈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가고 싶었던 농대는 수원에 하나 강원도에 하나 부산에 하나씩 있었지만, 강원도와 부산은 야간이고 수원농대만 주간이었는데, 멀리 수원까지 가서 또 새롭게 자취할 걱정이었다. 막상 갈만한 대학이 없다는데 충격이 컸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자기는 의과대학에 가려는데, 함께 가자는 꼬드김에 빠져 의대로 진학했다. 요즘 말로 갈 데가 없다는 충격이 새로운 기회를 찾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오늘도 즐겁고 건강한 하루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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