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귀절 금강경 21-1]제21분. 설한 것도 없고 설해진 바도 없다: 무슨 법을 설할까 하는 것이 없다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실 때 내가 법을 설한다고 생각을 하신다고 그런 생각을 하지마라. 여래는 법을 설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부처님은 의지를 가지고 행함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 가는 길을 물었다 어떤 사람이 물으니 동쪽, 어떤 사람이 물으니 서쪽이라 하신다. 그래서 부처님은 서울 가는 길을 천 개 정도 아시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것은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그건 부처님의 말씀하신 뜻을 완전히 모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아무런 길도 정해놓고 있는 것이 없다. 다만 중생이 물을 때 그의 위치에 따라 답이 나오는 것이다. 중생의 번뇌 따라 중생의 근기 따라 그냥 나오는 것이다.
부처님은 무슨 법을 설하실까 하는 것이 없다. 부처님은 인연 따라 법을 설하신다. 오늘 춘천에 사는 사람이 서울 가려면 서쪽으로 가야 하는데, 예전에 부처님 당시에 인천에 사는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 서울 가는 길을 물어 동쪽으로 가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기가 있는 춘천을 기준으로 동쪽으로 가면 강릉인데 이게 어떻게 서울 가는 길인가? 이렇게 해석하는 것과 같다. 사람다운 행동을 하지 않는 망나니 같은 사람에게는 윤리도덕을 지킬 줄 아는 인간이 되라 하고 가르친다. 부처님의 말씀은 중생의 근기따라, 인연따라 법을 가르치고 설하신다.
항상 겸손해야 하며, 학벌에, 권력에, 피부빛깔에, 재산에 기죽을 일이 없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당당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기가 죽을 일은 없다. 옛날 스님들이 왕에게 기죽지 않았던 것은 얻을 것이 없어서다. 하느님이 와도 얻을 일이 없으니 굽신거릴 일이 없다. 굳이 해준다고 하니 앞에서 햇빛이나 가리지 마라. 이런 사람은 그 누구도 어쩌지 못한다. 이렇게 당당해지자.
넘어지면 또 다시 일어나고, '아이고 돌부리에 걸렸구나'하고 일어서면 그 뿐이다다. 사업이 망해도 마찬가지다 '공부값이 많이 들었네.'하고 다시 일어서면 된다. 서울에서 부산 가는데 비행기가 가장 빠르지만, 돈이 만 원 밖에 없다. 그러면 공사장에서 일해서 돈을 벌어 가는 게 빠를까? 삼등열차를 타고 가는 것이 빠를까? 인연 따라 길이 있는 것이지, 어떤 길이 더 좋고 더 나쁜 게 아니다. 돈이 있다면 이건 말할 필요가 없다. 조건 붙는 인생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려 하거나, 남을 바꾸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뀌어야 한다. '일체 중생을 구제하라'는 말은 내 자신 속의 상(相)을 깨트리는 것이 일체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일체 중생에게 시비를 걸지 않는 것이 구제하는 것이다. 자기 잘 났다고 내 남편이 이것을 알아 들을까? 저거 언제 사람되지? 나의 상을 버려면 일체중생이 그대로 부처임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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