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용의주도하게 사회적 예절규범들이 지켜지고 있는 현장을 볼 때가 있다. 트림을 하거나 저속한 표현을 내받는 것은 누구도 잘 하지 않는다. 공손하거나 겸손의 원칙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말을 자르거나 말소리가 커지는 일도 없고, 요란한 웃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떤 도덕적 또는 윤리적 원칙이 조금이라도 침해될 여지도 없어보이는 등 요컨대 평범하고 인정받을 만한 완벽히 교양 있는 모습들이다.
주목할 점은 이 풍경에서 세련된 예의의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모임에서 참가자 중 한 사람이 별로 말을 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면,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알맞은 시기에 적절한 대답만 한다.
그러면서도 앞에 나서서 자신의 의견이나 이야기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시간 남짓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없다. 퍼즐은 완성되었고 모두가 선망하는 자리를 찾았지만, 그만이 자신의 자리를 아직 찾지 못한 것이다.
마침내 이 조용한 첨석자에게 무심하고도 정중한 질문이 던져진다. "어떤 일을 하시나요?"라는 질문에 "네 직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게 전부다. 그 이상은 캐묻는 모습이 되므로 다들 자제하는 눈치이다.
하지만 그런 모호한 대답이 방대한 가능성을 제시한 탓에 호기심은 이미 한껏 부풀어 올랐고, 이 손님은 자신이 알 만한 중견기업의 대표라고 사실 그대로 말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런 예의는 보기 드물고 아름답다.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이 이 사람과 같은 겸손함을 보였다면 진정한 대화가 가능해서 들을 가치가 충분한 말이 쏟아졌을지도 모르고, 흥미롭고 중요한 토론들을 통해 자아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활기를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언어적 자극이 고막에서 혀 근육으로 곧장 다다르는 대신 인간의 가장 중요한 창조력인 생각과 의견들을 낳았을 수도 있다. 이 자리에서 주목할 만한 하나는 그 자리의 모든 구성원들의 넘치는 자아가 눈에 뚜렷하지만, 그 사람만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기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인정, 즉 모르는 사람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의 자신에 대한 사랑은 이미 충분하고, 자기애는 정당한 것이며, 자신이 웬만한 사람들보다 더 두드러진다는 생각은 옳고 맞다. 자부심과 예의는 매우 다르다.
자부심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와 관련이 있다면 예의는 다른 사람을 어떻게 보고 대하는지와 관련이 있다. 자부심이 높으면서 예의가 없는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고, 그 사랑이 자신의 모습으로 정당화되지만, 상대의 감정은 무시해서 마음 편하게 어울릴 수 없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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