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귀절 금강경 20-4]제20분. 색도 떠나고 상도 떠나라: 물은 본래 자신의 모습이 없다
인생살이는 여럿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생활이고, 그런 사회생활은 사람과 사람들이 만나는 접점에서 시작된다. 어떤 조건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가에 따라 무엇이든 고칠 점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장려해야 할 점이 되기도 한다. 즉 본래부터 고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상황이나 인연에 따라 '갑'을 만나면 장려할 장점이 되기도 하고, '을'을 만나면 고쳐야 할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고쳐야 될 상황이면 그냥 고치기만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결혼한 신혼부부를 생각해 보면, '고칠 사람은 내가 바로 당신인데 왜 내가 고쳐야 하느냐'는 원망심과 '당신만 아니면 내가 고치려고 이렇게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자만심이 그냥 단순하게 고치기만 하면 될 일을 복잡미묘하게 감정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나는 옳다'는 고집이 인연에 따라 분명히 내가 고쳐야 할 때라도 도무지 스스로 먼저 변하려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물처럼 자신의 모습을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물은 본래 자신의 모습이 없다. 담기는 그릇에 따라 다양한 모양을 이룰 뿐이다. 항상 언제 어디서나 모습이 바뀌기 때문에 그 어떤 대상과도 마찰이 일어나지 않는다. 막으면 고이고, 차면 넘치고, 이쪽을 막으면 저쪽으로 흐르고, 사방이 막히면 조용이 기다린다. 즉 본래 고칠 것이 없지만, 내가 고친다는 것은 상대에게 맞추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만 맞지 않는 부분을 맞추어 가는 것이다.
산에 있는 나무는 그 자체로는 어디 하나 손델 데가 없이 완벽하지만, 집을 지을 때는 대들보를 만들거나 서까래를 만드는가에 따라 제대로 용도에 맞게 다듬어야 한다. 그러다 다시 집을 해체하여 문짝이나 가구로 만들어야 하면 다시 다듬어 맞추는 것이 바로 인연에 따라 나을 맞추는 도리라 할 수 있다. 고생해거 겨우 고쳤는데, 또 바뀌어야 한다고 화를 낼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스스로 세상에 맞추어 가는 것, 그것이 인생살이이기 때문이다.
고치지 않으려고 고집하는 것이나, 노력해서 고친 것을 다시 고치려 하지 않는 고집이나 모두 똑같은 집착에 불과하다. 일체의 고정의식을 완전히 풀어 흩어버리는 것이 소위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상(相)을 떠나는 길이다. 마음이 물처럼 풀어질수록 점점더 자유로운 상태로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제상(諸相)이 상(相)이 아님을 알 때 깨달음을 얻게 되는 이치'다. 장, 단점 자체가 고정된 것이 아니며, 서로의 만난 인연에 따라 맞추는 것, 거기에서 갈등하고 다투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세계가 열리게 된다. 봉사하거나 보시하는 것도 이와 똑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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