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귀절 금강경 21-4]제21분. 설한 것도 없고 설해진 바도 없다: 주리반특 존자의 화두
부처님께서 평생을 대중들과 함께 하시며 수많은 설법을 하셨으면서도 설한 것도 없고 설해진 법도 없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부처님의 제자 중에 '주리반특'존자라는 분이 있다. 제자들 중에 가장 머리가 나빴던 분으로 함께 출가한 그의 형은 비상한 머리로 금방 법의 이치를 깨달아 열심히 정진할 수 있었지만, 주리반특은 법의 이치를 이해하기는 커녕 여러 번 들은 법문의 내용 자체도 기억하지 못했다. 공부에 꾀를 부리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라 무진 애를 쓰고 노력하지만 본래의 어리석음 때문에 들으면 들을수록 머리만 복잡해질 뿐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 모두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었다.
제자들로부터 자세한 사정을 들은 부처님께서 주리반특에게 "너는 무엇을 잘 하느냐?"고 물으셨다. 주리반특이 부끄러워하며, "저는 그다지 잘하는 것이 없습니다. 스승님. 하지만 세상에 있을 때는 청소를 잘 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부처님께서는 "그렇다면 앞으로는 이 곳에서 청소를 열심히 해보라."고 말씀하셨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기껏 세상을 버리고 도를 닦으려 출가했는데, 수행이 안된다고 청소를 시키는가 싶어 억울한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주리반특은 어렵게만 느껴지는 수행과는 달리 청소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잘 할 수 있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매우 흡족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너는 청소를 할 때 어떻게 하느냐?" 주리반특이 대답하기를, "예 더러운 것이 있으면 다 깨끗이 치우지요." "그렇다면 앞으로 청소를 하면서 '티끌을 털고 때를 닦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청소를 해봐라"고 말씀하셨다. 주리반특으로는 '티끌을 털고 때를 닦는다'는 말은 너무나 당연해서 특별히 따로 외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청소를 한다는 것이 바로 그 일이기 때문이다.
주리반특은 명상도 공부도 다 내버리고 '티끌을 털고 때를 닦아라'는 마음에만 집중하면서 오로지 즐거운 청소에만 몰입했다. 보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주리반특은 청소를 하다가 마음이 열리는 것을 느꼈다. 부처님께 달려간 주리반특이 "티끌을 털고 때를 닦는 것이 바로 제 마음의 어리석은 티끌을 제거하면 바로 청정한 자리에 도달한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라며 머리 숙여 인사를 드렸다. 드디어 어리석기로 유명한 주리반특도 법의 본질로 성큰 다가선 것이었다. 부처님께서 아라한과를 인정하셨다.
'티끌을 털고 때를 닦아아'는 말만 놓고 보면, 사실 심오한 철학이나 오묘한 진리가 깃들어 있지 않는 너무나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내용이 없는 대화에 불과해서 종교적인 진리라 하기엔 오히려 부적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주리반특의 입장에서 보면 깨달음의 길로 인도한 위대한 설법이었던 셈이다. 이것이 바로 설법이라 할 어떤 내용도 없는 설법의 전형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사람에게는 이렇게, 저런 사람에게는 저렇게 설법을 한다는 문제 은행식 정답을 정해두고 있다가 하나씩 꺼내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설법을 한다거나 했다는 일체의 생각이 없으셨다는 말이다. 그냥 그에게 적절한 방향을 제시했을 뿐이다.
|
다음글 : 
이전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