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물질영역이고 문화는 정신영역에 가깝다. 얼핏 기술과 문화는 물질과 정신의 관계처럼 상이하거나 대조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얼굴보다는 마음, 형식보다는 내용, 기술보다는 문화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아날로그적인 생각이다. 얼굴과 마음, 형식과 내용, 콘텐츠와 미디어, 기술과 문화는 따로 떼어놓을 수도 없거니와 떼어놓는다고 해도 큰 의미가 없다. 디지털 시대에는 사실 기술과 문화를 기술적으로 구분하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기술적, 문화적 융합이 디지털형 문화와 잘 어울리며 지금 사회와도 코드가 맞다. 컨버전스는 여기저기 하청을 줘서 만든 부품들을 모으고 조립하는 산업시대의 분업과 전문화 추세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한 우물을 파고 기술 하나에만 매달리다 보면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었고 그 기술의 대가가 될 수도 있었다. 분업은 사회발전과 맥을 같이 했고 각 분야 전문가들에 대한 수요를 불러왔고, 개별적인 기술과 개별적인 영역에서의 발전은 가능했지만, 기술과 기술의 윈윈하는 결합을 통한 상승발전은 불가능한 한계에 도달했다.
디지털 시대에는 여러 가지 기술이 융합돼 하나의 새로운 기술을 만들고, 서로 다른 학문 분야들이 협동연구를 하는 다학제 환경을 맞고 있다. 첨단기술영역에서 IT와 BT가 결합해 BIT(생명정보기술)라는 새로운 기술영역이 생기고, NT와 BT가 결합돼 NBT(나노생명기술)라는 새로운 영역이 나타난 것이 좋은 예다.
서로 다른 사고, 개념, 아이디어, 기법, 방법론, 경향, 철학, 사상의 만남은 잡탕스런 혼란이 아니라 오히려 창의성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분업보다는 협업이, 한 가지 기능보다 다기능 멀티플레이어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분리되어 막혀있던 각 영역들은 빠르게 서로의 벽을 허물어 경계를 없애고 있다.
'유비쿼터스(ubiquitous) 컴퓨팅'이 대표적이다. 신이 시공간을 초월해 존재하듯 컴퓨터가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환경을 뜻한다. 과거의 정보혁명은 컴퓨터 속에 사무실과 쇼핑몰, 도서관을 집어넣어 사이버 스페이스, 즉 온라인 공간을 만들었다.
유비쿼터스 컴퓨터 시대에는 똑같은 컴퓨터 기술에 기반을 두면서도 물리적 공간 속에 컴퓨터를 집어넣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물에 컴퓨터 칩이 내장되고 서로 네트워크로 연결된다면 온–오프라인 구분이 없어지고 고전적인 공간 개념은 사라지게 된다. 디지털 컨버전스는 바로 이런 유비쿼터스 사회에 맞는 기술환경이다.
디지털 컨버전스에서는 휴대성, 편재성, 용량, 호환성, 조작성 등이 중요한데, 결국 기술발전과 기술융합이 만드는 유비쿼터스 문화다. 변화는 기술로부터 시작되어 문화변동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므로 기술변동을 추적하다보면 문화의 변화가 보이게 된다.
디지털 시대에는 기술과 문화는 분리될 수 없다. 컨버전스는 그래서 기술이면서 동시에 문화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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