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의예과 2학년 때 함께 바위타러 가기로 했던 친구가 나오지 않아 혼자 제법 무게가 나가는 암벽등반 장비를 지고 산에 가서 평소 한 번씩 가던 바위길에서 바위와 바위 사이의 트레바스를 건너 뛰면서 잡은 바위가 장비를 더한 나의 몸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떨어졌다.
약 2~3m 쯤의 바위 절벽을 떨어지다 바위 중간에 자라고 있던 나무에 걸렸다. 떨어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그 때까지의 내 짧은 삶이 영화필름처럼 머리 속에서 돌아갔다. 덜컥하고 걸린 순간 가장 처음 든 생각이 '와 살았네!'라는 감탄사였다.
그 다음은 그런 바위 절벽에서 떨어지는 절대절명의 순간에도 삶에 대한 커다란 집착에서 시작되는 궁금증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이 위기의 순간에 내가 살아날 수 있을까?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것들이었다. 그런 순간에 저 아래 쪽 놀라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런 놀람들이 나에게는 아무런 감정의 기복이 없이 그냥 흑백의 그림 속 움직임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점차 감정적 기분이 느껴지며 온 몸에 힘이 쫘악 빠지고 늘어졌다. 그야말로 생명이 걸린 낯선 새로운 순간에 왜 그런 궁금증이 생겼을까? 아직도 궁금하다.
주변 환경으로부터 내 마음을 어느 정도 분리시켜 어떤 일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데, 임사체험이라고 일정 시간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이 처음에 느끼는 그런 감정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마음가짐일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서바이벌 울트라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몇 일간을 잠을 자지 않거나 길 위에서 잠깐씩 쪽잠을 자며 수 백키로 미터를 계속 달리는 사람들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 사람이 잠을 자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전쟁에 참전한 장병들이 느끼는 것도 이와 비슷한 감정일 것이다. 잠을 못자서 어떤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진실로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체험해 보지 못한 나약한 사람으로 보이는 이유다.
살아가면서 이것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고, 저것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똑같다. 그런 생각들은 틀렷다. 식물들과 동물들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최선의 삶을 살아가듯 사람들도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환경에도 더 잘 적응할 수 있다.
세상이 편해지고 복잡해질수록 점점더 정신의학적 문제는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의 1치적 심리적 반응에 머물러 잇기 때문에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하지만 더 나아길 방법을 사회적으로 찾아야 하는 때가 이미 다가왔다.
살아가면서 자살을 생각해 보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까? 아마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희망과 절망. 즐거움과 우울함 사이의 심리적 균형이 깨어지면 세상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감과 삶의 무가치함에 직면하면 현실의 고통이 누구나 자살을 생각하게 만든다.
세상 살이에서 좋다 나쁘다거나 옳다 그러다의 감정적 갈등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런 이치를 이해하게 되면 삶과 죽음 또한 별개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면 죽음조차도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된다. 일단 사는데까지 살아보는 것이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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