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들이 뜸한 빨간불이 켜진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 위로 한 발을 옮겨놓기 전에 '아 조금만 참자'하고 멈출 수 있다면, 조급하여 안달이 난 마음과 아마도 마음 속 자욱하게 깔린 죄책감과 나의 자기판단을 인식할 수 있다.
우리 마음의 멈춤도 원래가 시간이 되면 바뀌는 교통신호기의 빨강과 초록불빛처럼 시간이 제한되어 반복적으로 순환된다. 잠깐의 멈춤 후에는 다시 해오던 활동을 계속하지만 증가된 존재감과 향상된 선택 능력이 내 일상의 삶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초록 불빛의 횡단보도를 건너면 안전의 의미를 충분히 음미할 수 있고, 조급한 마음에 건너편 길만 보고 달려가는 대신에 느긋한 여유로 주위를 살피며 걸어갈 수도 있다. 신호들의 불빛을 따르거나 않거나 다음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신호등의 약속을 무시하지 않고 잠깐만 멈추면 앞 쪽만이 아니라 상하좌우의 세상도 함께 눈에 들어오며 다음 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와 관계없이 현재 내 마음 속 욕구와 두려움에 대해 새로운 창의적 반응의 가능성을 얻게 된다.
기차 시간이나 비행기 시간이 임박하면 혼잡한 곳이라도 멈추지 말고 역이나 공항 탑승구로 계속 달려가야 한다. 누군가 나를 때리려 하면 나도 가만히 있지 말고 재빨리 나 자신을 방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럴 때는 절대로 가만히 서 있어서는 안된다.
일상의 삶에서 세상 흐름에 떠밀려 가는 속도와 습관의 많은 부분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것도 아니며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뭔가가 잘못되었다거나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다는 막연한 불안감으로부터 발생한다.
심지어 실패나 상실 혹은 죽음에 직면해서 두려움이 엄습할 때도 나 자신의 본능적인 긴장과 힘든 대응은 대부분의 경우 효과적이지도 현명하지도 않다. 그 때 가던 길을 멈추고 가만히 세상을 바라보면 나를 몰아가고 있는 내면의 두려움과 욕구를 볼 수 있다.
뭔가 부족하다거나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나를 어떻게 미래에 열중하게 만드는지를 의식하게 된다. 경제 개발시대에 대가족제의 닫힌 농경사회에서 핵가족의 열린 산업사회로 의식이 깨인 부모들이 가정과 자식의 미래를 위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현재의 결핍감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 선택해야 한다는 헛된 시도를 계속하거나 근본적으로 수용하는 지혜를 발휘하여 나 자신의 취약점을 대면하고 그에 따른 격렬한 고통을 수용함으로써 그런 감정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살아가면서 한번씩 멈추어 나를 살펴보는 시간이 가장 필요할 때는 바로 그렇게 하기가 가장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분노가 폭발하거나 슬픔의 쓰나미에 압도당했거나 마음이 욕망으로 넘칠 때가 바로 멈추어 마음을 열고 그런 두려움을 수용해야 할 때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
다음글 : 
이전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