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눈을 뜨니 창 밖에 내리는 가을비의 맑고 촉촉함이 기분을 좋게 만든다. 제발 비가 충분히 내려 가뭄에 목말라하는 대지에 충분한 생명의 기운을 회복시켜 주길 마음 속으로 바래본다. 구름 낀 강 건너 풍경이 눈에 익은 시골모습을 닮아 더욱 푸근하다.
예전에는 사진이 없어서 무슨 글이든 먼저 주인공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재의 시간과 장소를 밝히는 것이 순서였다. 육하원칙이 그래서 시작되었을 것이라 혼자 생각한다. 요즘은 사진기술이 발달하여 사진 한 장으로 모든 것을 나타낼 수 있다.
아침에 햇살이 떠오르면서 강 건너 하얏트 호텔에 반사되어 붉게 주위로 산란되는 아름답고 눈부신 강한 아침 기운의 강동족안 정경을 글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사진 하나로 모든 것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남산과 한강은 태초부터 거기에 그렇게 있은지가 오래 되었고, 밤이 가고 아침이 오는 순리 또한 그대로 영원한데, 그 오래됨과 영원함이 글과 사진 속에 순간 순간 역동적으로 생동감있게 표현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글이고 사진이 될 수 있다.
우리 삶에서 반드시 있어야 하고 없으면 안 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들이 의식주이지만 막상 살아가면서 하는 생각에는 그런 일상적인 것들은 거의 존재하기 않는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그런 것들에 대응하여 파생되는 나와 너, 그리고 감정 같은 것들이다.
불교에서도 경전이나 예불을 무시하고 참선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바로 그런 우리의 삶의 모습을 바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 자신의 내면의 해탈을 얻는 스승으로 사람이나 제도가 아니라 일상생활이나 대자연에서 가르침을 배우고 깨달음을 얻으려는 것이다.
일상 생활이나 대자연의 변화하면서도 영속하는 모습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 목표가 되면 경전이나 예불은 의미를 잃고 하나의 자연물에 불과하게 인식된다. 삶의 과정은 직선이 아니며 구불구불 보일듯 말듯한 길을 따라 어렵게 걸어가야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지금 내 주위에는 나 혼자 밖에 없지만 내 생각 속에는 많은 친구들이 항상 나와 함께 놀고 있다. 강 건너에서 보이는 하얏트 호텔은 그냥 커다란 유리로 된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가까이 가보면 꽃과 나무로 빽빽하게 둘러쌓여 고요 속에 자리잡고 있다.
이른 아침 호텔 주위 남산 자락의 수많은 숲과 나무와 풀과 잎과 꽃에서 만들어지는 맑은 이슬과 신선한 피톤치드 내음에 심신이 안정된다. 그 상황 자체도 하나의 선방으로 손색이 없는 깨달음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강남에서 강을 건너 한남동을 지나 남산에 가는 길은 좁은 골목과 넓은 대로와 강을 건너는 다리길과 오르막과 내리막길, 조용하거나 번잡한 길 등 다양한 변화를 보이다 결국 아름다움과 정적 고요함의 자리에 도달하게 된다. 인생을 길이라 비유하는 이유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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