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춘천 마라톤 대회에 갔다 왔다. 애초부터 이번 대회는 완주 시간이 아니라 즐겁게 가을의 정취를 즐기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느긋하게 달리다 걷기도 하면서, 힘들어 하는 주자들에게 나름의 격려도 하면서 나홀로 즐기는 대회였다.
가뭄 때문에 나뭇잎들이 말라 아름답고 다채로운 단풍은 볼 수 없었고, 춘천댐도 방류를 멈추고 수문을 꽉 닫은 상태로 있었지만, 멋지고 행복한 많은 달림이들과 함께 한 경험은 또 하나의 새로운 삶의 경험이었다.
다채로운 색깔과 이른 아침의 빛으로 가득 차있는 주위 풍경, 나무와 수풀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도 내 의식을 가득 채웠다. 그것은 눈과 귀가 세상을 뇌로 받아들이는 그림이자 소리였다. 눈과 귀는 마치 카메라와 녹음기처럼 움진인다.
눈과 귀는 마음의 극장에 외부 세상을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반영하는데 익숙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세상을 단순히 반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신비롭고 복잡하다.
뇌는 실지로 매순간 내가 살아가는 현실을 창조하고 있다. 뇌는 단순히 외부 세상을 거울처럼 있는 그대로 비추는 것이 아니라 감각 정보들은 원재료로 뇌로 들어오지만 그대로 최종적인 이미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뇌가 현실을 일관성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뇌는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감촉을 느끼고, 기억이 제공하는 원정보들로부터 현재의 현실을 재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주위 풍경과 소리에 흠뻑 빠져들어 춘천댐 주위의 한적한 길을 달리는 동안 나의 자연의 느낌들은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잠원동에서 춘천으로 가는 '그 때' '그 길'을 버스가 달리는 동안 '나'는 평소의 내가 아니었다. '여기 안'과 '저기 밖'은 내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서로 다른 그림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것이다. 어렴풋이 밝아지고 있는 세상은 바로 내 마음이었다.
밝아진 세상 속에서 춘천호반을 한낮의 멋진 풍경과 맑은 공기 속에서 약간은 상기된 기분으로 달리고 있던 세상 또한 바로 내 마음이었다. 생각은 말할 것도 없고 세상과 분리된 자아는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여기 안과 저기 밖은 둘이 아니다.
나에게 스며드는 그런 생각들에 빠져 달리다 걷기도 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무아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외부 세상은 색깔이 없는 순수한 에너지의 모습이다. 눈과 귀는 세상의 아주 작은 부분만 알려줄 뿐이다.
색채로 가득찬 세상은 일종의 속임수일 뿐이다. 그것은 나의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세상과 얽혀있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달리기가 마음에 있는 그 무엇을 변하게 하고,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한 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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