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귀절 금강경30-11]제30분. 둘이 하나 되는 이치: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자
'우리 집'이나 '내 방'이라고 하지만, 그런 집이나 방의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름을 그렇게 부르고 있을 뿐이다. 시멘트와 철골을 빼버리면 벽이 없어지고 집이나 방도 사라지게 되고, 집이나 방이라 부르거나 규정할 것이 없어진다. 즉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
"불수자성 수연성"이란 말이 바로 스스로의 성품이랄 것은 본래 없는 것이며, 단지 인연에 따라 나타나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내가 살아가면서 만드는 행동이나 말의 선악도 마찬가지로 선이나 악이라 규정할 만한 고정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자성(無自性)'이라 한다. 모든 것이 인연에 따라 결정되고 이루어질 따름이다.
우리의 의식은 보통 '있다'와 '없다'거나 '같다'와 '다르다'라는 상대적 관념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계속 어느 한 쪽을 택하려는 데 집착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더 인연에 따라 이루어지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는 평범, 평등한 진리에 쉽게 화합하지 못하는 것이다. 즉 부처님은 그런 미혹을 이미 떠났기 때문에 화합하여 이루어졌다고 이름할 수 있다.
내가 살아가는 일상의 생활도 언제나 같다고 할 수도 없고 다르다고도 할 수 없으며, 그런 삶의 방식이 옳다거나 그르다고 할 수도 없다. 이런 이치를 바로 하는 것이 무아의 깨달음이요, 공(空)의 도리이며, 수연성(隨緣性)의 이치이다. 현상계의 시공간에서는 언제나 합당한 일이 일어나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아이가 부모 말 안 듣는다고 화를 내어 "그럴려면 집 나가라" 했는데, 아이가 집을 나갔다고 현관 문 비밀번호를 바꾸어 버린다고 생각해보자. 친구 집에서 하루 밤을 보낸 아이가 다음 날 부모의 마음이 풀려서 돌아온 자신을 아마도 반겨 안아줄 것으로 생각하고 문을 열었는데, 비밀번호가 바뀌어 문을 열 수가 없다면 아이의 버림받은 느낌이 어떨 것인가? 얼마나 황당하고 진심을 몰라주는 것에 억울하고 상처받을 것인가? 인연에 따라 일어나는 이치를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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