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귀절 금강경31-3]제31분. 알았다는 생각을 내지 마라 : 신기루에 현혹되지 마라
십이연기나 오온설 등 당시의 철학적 조건을 배경으로 설명된 것이다. 즉 바깥 경계에 끄달려 다니는 한, 종속성을 면할 수 없다. 지금 만약 화를 내고 있다면 바깥 사물에 끄달려서 마치 낚시밥에 걸린 물고기처럼 나를 고집하는 무엇인가가 걸려들어 버린 것이다. 이 근본 뿌리,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을 놓아버리면 그 어떤 경계에 끄달리지도 않고 마음도 고요해진다'는 것이 부처님의 간단한 설명이었다.
그런데 불성이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지금까지 어떤 존재라 하면 거기에는 '그것'이라 규정할 만한 고정불변의 핵심, 즉 근본 씨앗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모든 존재는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연관이 맺어지면 존재로 인식이 되고, 그 연관이 흩어지면 존재로 인식되지 않는다. 물 한 방울이 있다면 그 물은 물이 아닌 수소와 산소 분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이들이 결합되어 있는 동안은 물로 인식되지만, 결합이 끊어지면 더 이상 물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인식은 '있다' 혹은 '없다'거나 '생겨났다' 혹은 '사라졌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물이라는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고 사라지고, 있고 없고의 관념이 일어나는 것이라면, 수소 분자와 산소 분자의 결합성격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따라 인식의 차이가 생겨날 뿐, 물의 실체적 관점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다.
다만 물이라는 존재에 집착하고 있을 때 연관되면 존재하고, 연관이 흩어지면 그 존재가 사라지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육안으로 인식된다고 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반대로 인식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것은 이미 수많은 과학적 발견 속에서 입증된 바 있다. 자동차가 수만 개의 부품으로 조립되어 완성품이 되면 자동차가 있는 것이지만, 부품으로 해체되면 자동차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자동차라는 어떤 씨앗이 있는 것이 아니다. 부품들의 연관에 의해 존재하고 연관의 성격이 달라지는 데 따라 변화하게 될 뿐이다.
보약과 독약의 차이나 선과 악의 차이도 그렇다. 어디에도 고정된 성격이나 실체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인녕에 따라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하고, 악과 독, 선과 악의 구별로 다가오는 것일 따름이다. 고정불변의 실체라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밤하늘의 레이저쇼를 보거나 불빛 속의 분수쇼처럼 형형색색의 모양들이 눈 앞을 수 놓지만, 그것의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신기한 신기루이거나 물거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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