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다. 올 한 해 나는 얼마나 정신 없이 내달려왔나? 아마도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한시라도 빨리 도착하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주위에 뭐가 있는지, 오랫만에 만난 친구도 그냥 손 한 번 흔들어주고 지나쳐오기 일쑤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기막히게 아름다운 절경들도,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들도, 맛있고 군침도는 열매들도 못본 척, 아니 보지 못하고 지나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지요?"라는 인사보다 "많이 바쁘시지요?"라 인사할까!
묻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들, 우리 모두가 이미 바쁘다는 사실을 이미 기정사실로 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릴 적만 해도 집에 온 손님이 갈 때 배웅하며 "천천히 살펴 가세요."라 하직 인사를 하고, 골목을 돌아갈 때까지 눈으로 배웅하곤 했다.
요즘은 집에 온 손님이 갈 때 어떻게 하는가? 현관문을 나가기 무섭게 "조심해서 가세요."하고는 문을 닫고 집안으로 들어와버리고, 손님도 엘레베이터나 차를 타고 그대로 내빼듯 떠나간다. 뒷모습을 지켜봐줄 마음의 여유도, 시간도 없는 것이다.
이런 급박한 삶 속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빼곡하게 채워진 스케쥴에 따라 정신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으면서 속으로는 충실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 사실은 공허감을 쌓아가고 있다.
내 삶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아니면 따라오고 있을까? 바쁘게 달려가는 만큼이나 나의 진정한 삶과의 거리는 자꾸만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항상 똑같은 시간, 똑같은 운동을 똑같은 강도로 하는 사람들처럼 혼자 열심히 운동한다고 생각하지만, 효과는 별로다.
인생은 편도길이다. 한번 지나가면 다시 되돌아올 수가 없다. 비행기나 로켓을 타고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면 잠깐은 속도감에 쾌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기나긴 여행길을 타임캡슐처럼 시간을 압축하는 것과 똑같은 행동이다.
천천히 두 발로 걷거나 달리며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가다 보면, 꽃과 새가 보이고 비바람이 나뭇임을 스치는 소리도 들리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인생의 맛을 느끼게 되고, 즐길 수 있게 된다. 급히 음식을 씹는 것보다 천천히 씹어야 음식맛을 음미할 수 있다.
새해에는 너무 바빠 쉴 수 있을 만한 여유가 없다고 느껴지더라도, 의도적으로라도 쉴 시간을 만들어보자. 그래야 생활에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면서 더 멀리, 저 높이 나갈 힘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바쁜 걸음이라도 잠깐만 멈추고 나를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자.
봄에 피는 꽃과 가을에 지는 달, 여름을 식히는 바람과 겨울을 감싸는 눈을 음미해보자. 풀이 자라고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봐도 좋다. 이 모든 것이 인생이 나에게 베푸는 최고의 축복이니까 말이다. 놓치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는가?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한 해 마지막날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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