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귀절 금강경31-9]제31분. 알았다는 생각을 내지 마라 : 진리는 단지 이름이 진리일 뿐이다
사람들이 '존재'라고 말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생멸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생기고 사라진다고 내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존재와 비존재가 구별되는 것처럼 생각되는 착각일 뿐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물이 증발하여 수증기가 되었다고 해서 물이 사라진 것이 아니듯이, 수증기가 응결되어 눈으로 내렸다가 녹아서 다시 물로 모습을 바꾸는 것처럼 단지 연관의 다양한 변화일 뿐 엄격한 의미에서 생멸이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나'란 존재에 대한 부처님의 바른 지견이다.
중생에 대한 부처님의 바른 지견은 무엇일까? 중생은 생로병사와 관련된 온갖 괴로움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데, 이에 대해 괴로움이나 번뇌의 고통이란 본래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중생들이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각 개인이 모두 본래 부처이기 때문인 것이다. '인간은 본래부터 부처다'라는 이 사실을 제대로 알면 '완전무결한 부처다'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된다. 이게 부처님의 분별은 중생의 분별과 달라 '분별이 아닌 분별'아라 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존재의 실상을 알고 바라볼 뿐, 중생들처럼 자기에게 좋은 업식을 분별하는 것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우리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믿고, 이와 같이 이해해야 한다. 주관과 객관이 모두 사라져야 한다는 말이다. 어떤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내 밖의 어떤 대상이나 경계에 내 마음이 끄달린다는 것이고, 나와 바깥의 경계가 둘로 분별되어 합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미 '나'라는 생각과 아상을 가지고 있는 한, 그런 일체의 주, 객관의 분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분별이 끊겨야 비로소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게 된다. 내 눈을 가리고 있는 업식의 안경만 벗어버리면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구분짓는 온갖 분별의 그물망이 사라지고 눈과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걷혀진다. 고달픈 길은 끊어지고, 마음의 움직임마저 일어나지 않는 제법의 실상이 깨끗하게 시야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한 마음, 즉 어떤 견해를 일으키기만 하면 생각이 어긋나게 흐르게 되어 실상과 괴리되므로 진리하 하는 것도 이미 견해로 일어나면 더 이상 진리가 아닌 것이다. 까치가 짓고 참새가 무리지어 날아다니고 낙엽이 길바닥을 굴어다녀도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만 할 뿐, 감상을 짓지 말아야 실상을 놓치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혹시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거기서 어떤 모양은 짓지 말자. 그 생각 자체도 나의 것일 뿐 다른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나의 경험에 의해 일어나는 생각에 집착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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