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문화는 물질적이고 수량적이고 계량적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디지털 시대의 관심은 IT의 발전이 인간의 의식을 따라올 것인가?이다. 즉 인간의 생각 능력을 뛰어넘을 것인가?이다. 인간의 의식이나 생각이 어떤 일정한 방식이나 어떤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코 컴퓨터 같은 기계 내에서는 발생할 수 없을 것이다.
의식이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야말로 인간의 생각이 전적으로 메카니즘적일 수 없다는 어떤 표시이며, 다른 말로 컴퓨터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간의 생각을 넘어설 수 없다는 증거이다.
신경생물학의 인간모델도 의식이나 생각이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순간의 결정과 같은 것은 모두 신경세포들 사이의 제어 가능한 상호작용과 복합적인 집합에 의해 규정될 것이고, 여기서 자유 의지는 거의 어떤 권한이나 역할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일상에서 결정하는데 사용하는 자유의지는 그 존재 자체가 환상일 뿐일까?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면 정신적 자유는 어디에서 오는가?
신경생물학적 모델로는 어떤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나의 사고방식과 생활 방침에서 중대한 변화를 불러일으키는지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싸움과 강도질로 살아가던 사람이 어느 날 크게 다친 개 한 마리가 피투성이가 된 채 새끼를 낳아 마지막 숨을 헐떡이면서 새로 태어난 새끼를 사랑스럽게 핥아주면서 오직 새끼에게만 관심을 쏟는 모습을 보고 몸시 감격하여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는 싸움과 강도질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후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삶의 방식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깨닫고 나니까 일상의 삶의 관심사는 덧없고 실망스럽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때부터 사랑과 자비심에 대해 명상하고 불경을 공부하는 데 전념하여 유명한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다고 한다. 만약 인간이 신경세포들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갑작스러운 사건이나 성찰, 또는 내적 진리의 발견을 통해 나의 세계관과 삶의 방식, 내적인 환희를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나의 내면에 어떤 커다란 변화가 있을 때는 나의 습관과 행동을 결정하는 복잡한 신경세포 회로가 마찬가지로 철저하고도 갑작스럽게 재조직되는 현상이 동반되어야만 할 것이다. 반면에 의식이 비물질적인 연속체라면 느리고 복잡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물질적 관계망보다 훨씬 더 유연하게, 그리고 아주 쉽게 커다란 변화들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신경생물학적 모델에서는 나의 의식적 결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로 신경계가 개인이나 종의 생존에 최대로 기여함을 기준으로 외적 상활에 대한 최적 반응을 평가한 결과다. 개인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면 '개인 중심적' 반응이 될 수 있고, 종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면 '이타적' 반응이 될 수 있다.
이 모든 것인 의식이 없다는 가정하에서 프로그래머들의 추측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내가 행동한다는 환상을 가지고는 있지만, 보통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관객 혹은 수동적인 목격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뇌의 작용에 전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신경세포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어떤 계산의 최종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간단히 말하면 의식은 행동의 형태를 결정할 힘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기계적 체계는 특정 상황에서 특정하게 반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학습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무엇인가 ?'와 같은 특정한 어떤 것을 원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안약 인간의 행동에 자유 의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책임이란 있을 수 없고, 그로 인해 사회의 구조 역시 바뀌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의식이 단지 무력하고 유명무실한 목격자에 불과하다면, 모든 것이 무질서하고 일관성이 없고 가장 자의적이고 가장 극단적인 결정론을 선택하는 것일 뿐이다. 자유 의지와 사유만이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할 유일한 요소라 할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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