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전국에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고향에 모이거나 정기적인 친목모임에 만나는 사람들 중에 코메디의 황금콤비처럼 고정된 두 사람이 언쟁을 벌이거나 다투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식농사 잘못 지었다고 하고 그런 아버지를 아들이 항의하는 식이다.
대부분 부모는 반가운 마음에 자기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아들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아 무시당하는 기분에 잔소리가 많아지고, 아들은 아버지 잔소리가 시작되면 무엇인가 치밀어 올라와 가슴이 답답해지는 식이다.
갈등의 원인은 명확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가족 간 갈등은 다양하며 대부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갈등의 실체를 안다고 갈등을 해소할 수는 없지만 가족 관계를 보다 더 가깝고 편안하게 만들 방법을 찾을 수는 있다.
뇌는 진화 과정에서 호흡과 온도조절 등을 맡는 '원뇌(原腦)', 감정처리를 담당하는 '가장자리계', 이성적 판단을 맡는 '대뇌피질' 순으로 발전했다. 여기서 대뇌피질이 완벽하게 기능해 이성적으로만 판단하면 가족 간에 사소한 문제로 싸울 이유가 없어진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세상에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갈등은 가장자리계가 자극을 받아 무의식의 자기애가 상처를 입으면서 증폭된다. 가장자리계는 이처럼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억, 자동차를 몰거나 피아노를 칠 때의 작업 기억 등을 담당하는 ‘생존의 뇌’다.
갈등 상황에서 자기보호 본능이 상처받으면 가장자리계가 활성화되면서 이성적 판단이 마비되고, 논쟁의 합리화를 가장자리계가 주도하여 감정싸움으로 비화하게 된다. 가장자리계의 영역인 무의식 속에는 의식의 영역에 남겨 놓으면 살아가는 데 힘든 요소들이 억압돼 있다.
주로 어릴 적 부모와의 억압된 관계에서 형성되므로 부모에 의해 자극받으면 무의식이 변형돼 의식의 세계로 올라오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가족들이 모인 장소는 경험을 공유한 여러 사람의 무의식이 함께 있는 자리이므로 사소한 말에도 갈등 소지가 생긴다.
사회생활에서는 남의 무의식에 상처를 주면 반격을 받으므로 많은 사람이 조심하지만 가족의 경우 무의식적으로 ‘내 편’이라고 믿고 솔직하게 자신의 느낌을 다 표현해도 된다고 착각해 상대방의 무의식을 건드리게 되는 것이다.
특히 부모는 나이가 들면서 신체가 약해지고 호르몬 체계가 변해 상처받기 쉬워져 가족이 모이면 갈등의 소지가 커지기 때문에 평소 떨어져 사는 가족들은 이웃 사촌도 아닌 완전히 남이라고 인정해 상처받을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가족의 말에 울컥 하면 ‘아, 내 무의식이 상처를 받았구나’라고 여기고 천천히 심호흡을 하기만 해도 갈등이 증폭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해서 화낼 일이 아니었는데 화가 난다면 대부분 무의식에 상처를 받은 것이다.
내가 지금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과 비슷한 사람에 대해 과거 어떤 경험을 했는지 돌이켜보는 것도 좋다. 아버지와 갈등이 심하다면 과거 직장 상사와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를 생각해본다. 상사가 강압적이거나 갈등의 뿌리였다면 아버지와 생기는 현실적인 갈등이 무의식에 의해 증폭된다.
이런 사실을 깨닫기만 해도 무의식이 편안해져 갈등의 소지가 줄어든다.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이런 스트레스 탓에 갈등이 증폭될 수도 있다. 피로하거나 환경이 바뀌면 가장자리계가 과잉활성화해 작은 일에도 흥분할 수 있다.
따라서 긴장과 스트레스로 인해 피로감을 느낄 때는 가급적 민감한 주제에 대한 논란에는 끼지 않고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 좋다. 똑같은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무던히 지내지만 어떤 사람은 갈등을 일으키는데, 이런 대응하는 태도의 차이일 수 있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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