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귀절 반야심경 해설2]나는 누구인가?(2-3): 진리는 스스로 진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인기척이 나면 사람이 온 줄 알고, 연기 냄새가 나면 음식이 탄 줄 알게 된다. 척하면 삼척이요 하나를 말하면 셋을 알고 쩝하면 입맛이라는 말도 똑같다. 하나 이야기해서 셋을 알면 둘이나 넷과 다섯은 이야기하지 않아도 저절로 안다는 말이다. 무슨 일이든 하나를 확실히 알면 나머지는 다 저절로 알게 되어지는 이치다.
공(空)이란 그 하나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요 방법이며 실체다. 반야심경은 '마하'에서 시작하여 '사바하'로 끝나는 260자 경전이다. '마하'에서 그 하나를 깨달으면 '반야'를 읽을 필요가 없다. 손톱 크기의 컴퓨터칩 속에 수십만 단어를 기억시키는 것보다 그 보다 더 작은 티끌 속에 하늘과 땅을 모두 집어넣을 수 있음을 이해하고 "한 티끌 속에 시방세계가 다 있다."고 하신 신라시대의 의상대사가 벌써 컴퓨터의 원리를 알고 계셨다고 할 수 있다.
티끌이 스스로를 티끌이라 말하지 않고, 산이 스스로 "내가 산이다'라고 하지 않고, 단지 사람이 산이라 이름지어 부를 뿐이다. 우리가 비록 산이라 이름지어 부르지만 산이 산이 아니다. 나무 한 그루 돋아나지 않는 히말라야 만년설볼과 작은 야생화가 넘쳐나는 한라산 백록담은 똑같은 산이 아니다. 아이가 호기심에 한 모금 마셔보는 맥주는 어른들이 더위를 식히기 위해 시원하게 마시는 맥주와 똑같은 상표가 붙었지만 그 맛이 다르다.
먼지 하나, 티끌 하나, 실오라기 하나도 진리의 나툼이지만, 그것들이 스스로 진리라고 말하지 않으므로 진리란 저 먼 하늘 나라에나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설사 그것이 진리라고 깨달았다 하더라도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고, 그런 느낌을 표현하는 방법도 다르다. 그러므로 진리는 말로 표현하는 순간 이미 진리의 참뜻을 잃게 되는 이유다.
침묵을 설명하려 입을 열면 벌써 침묵을 잃듯이 말없는 진리를 말하고자 하면 벌써 말없는 진리가 아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동안에는 "입을 열면 그르친다."하고 "입을 열기 전에 이미 그러쳤다"고도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내 사랑을 말로 설명하거나 내가 마신 커피 맛을 조금도 틀리지 않게 상대에게 전할 수 있을까. 커피의 참맛을 상대에게 전해주려면 말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냥 커피를 마시도록 권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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