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시작하여 한다면 먼저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적이 되기보다 나와 같은 편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깨달음은 내적 변화의 결과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좋은 친구인가?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스스로 '나는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야.'라며 자신에게 너무 비판적이거나, 부족한 사람이라고 쉽게 생각해 버리거나, 내가 하는 일을 너무 하찮게 여기고 있지는 않는지. 부당한 대우로부터 나를 보호하거느 방어하려고만 했을 수도 있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일에 너무 무심할 수도 있다. 나 자신의 고통을 너무 쉽게 체념하고 받아들이거나 행복한 삶을 위해 마음 속으로나 실행활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 데 너무 소극적일 수도 있다.
내가 나 스스로를 돌보지 않은데 어떻게 남을 제대로 도울 수 있을 것이며, 내가 바라는 행복과 슬픔과 욕구, 꿈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가능할 수 없다. 이 모든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가꾸어나가는 것이 모든 삶의 바탕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런 깨달음은 현실 세상과 생각하는 마음의 본성을 밝히는 것으로 어떤 개념들을 넘어선 절대적 진리의 직접적 관조를 의미한다. 알아가는 것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며, 사물의 궁극적 본성을 알아내는 것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외적인 환경과 세상의 모든 현상과 나 자신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자식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지각의 세계에서는 현실이 분명히 실체로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감각적 현상의 이면에서는 영속적인 것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없지만 허무주의에 빠지지도 않으며, 있지만 영속적이지도 않다. 단지 인식하는 순간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나를 아끼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느낌을 떠올리자.
아침에 누가 깨워주는 것도 아닌데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내면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흥분들, 어서 뭔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초조한 느낌을 감지하면서 꼭 이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나 자신의 인식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지금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나의 인식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인식은 영혼 속에 있으며, 영혼은 더 커지거나 성장하지 않기 때문에 인식 또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커지는 것는 나의 마음이다.
인식은 영혼 속에 있고, 어떤 순간에 주목하는 것은 마음 속에 있다. 나는 지금 현재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한 인식에 더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영혼이 인식하고 있는 것과 그것에 주목하는 것을 합쳐 의식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이 영혼에 주목할 때 마음과 영혼은 똑같은 자료를 다루고 보유하며, 똑같은 관점에서 처리한다. 이 상태를 완전히 의식하는 것을 깨달음이라 부르며, 영혼의 인식이 마음이 집중하는 것과 만날 때 의식이 확장되는 것이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