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없으면 우리 몸에 닿는 어떠한 자극도 감각이 없어진다. 뇌에서 모든 희로애락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통증은 감각기관인 피부의 신호로부터 시작된다. 이 신호는 위험에 대한 느낌이 말초신경을 자극할 때 울리는 경보음과 같다.
수백만 개의 신호가 척추를 타고 뇌 하부에 이르면, 이 신호들은 분류되어 뇌의 더 높은 곳으로 전달되어 통증을 알린다. 다음으로 뇌는 미리 추려낸 메시지들을 분류하고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우리 마음은 통증에 가치와 의미를 주고, 내가 통증을 강하거나 약하게 느끼도록 바꿀 수 있다. 나 자신이 마음 속에서 통증을 고통으로 바꾼다는 말이다. 통증을 고통으로 느끼는 것을 줄이기 위해서는 진짜 통증과 생각이 만들어낸 통증을 구별해야 한다.
두려움, 공포, 죄책감, 외로움, 무력감은 모두 통증을 커지게 할 수 있는 마음의 반응들이다. 따라서 통증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약이나 다른 현대적 의학적 치료수단들을 사용할 수 있지만, 관점과 마음 자세를 바꿈으로써 대처할 수도 있다.
통증이라고 느끼는 불쾌한 감정에 대한 마음의 역할은 대부분 본능적인 것이 아니라 학습된 느낌이다. 가장 좋은 예가 최면 실험이나 플라시보 효과 등이다. 높은 차원의 두뇌의 기능이 낮은 단계의 신경에서 전해지는 통증 신호를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하다는 말이다.
마음이 고통의 정도를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즉 통증을 느끼고 참을 수 있는 능력이 인종에 따라 큰 차이가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통증에 대한 자세가 고통을 느끼는 강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통증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사색이나 명상을 통해 그에 대한 마음 자세를 바꿀 수 있다면 그런 노력들이 전혀 쓸모 없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통증에 숨겨진 목적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면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내 몸의 일부분으로 생각되지 않게 된다.
육체적 통증을 통해 심신이 하나의 몸으로 통합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지듯이 고통에 대한 경험은 다른 사람들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고통 뒤에 숨겨진 궁극적인 의미일 것이다.
내가 느끼는 고통은 내가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고, 나를 모든 살아있는 생물들과 하나로 연결시킬 수 있는 요소이다. 나와 비슷한 고통이나 시련을 겪는 사람들의 고통을 내 안으로 받아들여 없애줄 수도 있다.
고통스럽고 불행한 상황에서 도움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면 다른 한 편으로는 누구보다 자기 중심적이고 습관적으로 이기적인 성향을 드러내며, 다른 사람의 행복과 소망엔 관심조차 없는 나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고통받는 사람들과 이기적인 나의 모습 사에에 서 있는 중립적인 관찰자라면, 나는 어느 쪽에 더 많이 기울어져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런 객관적인 눈으로 본다면 집단이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이 한 개인의 행복보다 더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