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서 경제와 성장이라는 단어가 생활 속에 하나의 의식으로 자리잡은 때는 언제일까? 아마도 1960년대 이후일 듯하다. 경제라는 안경을 통해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고, 경제라는 잣대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세상이 되었다.
일상 생활도 경제적으로 파악하고 경제로 자족하는 경제제일주의가 우리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국민 일인당 총생산량이 8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던 60년대 초까지의 낙후된 경제 상황에서 시작하여 80년대 초에 2000달러를, 80년대 말에는 4000달러를 선을 넘었다.
선진국 진입 단계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할 때까지 모든 상황 인식은 모두 서구 자본주의 국가를 모형으로 삼고 '발전'이란 말 자체가 경제를 의미하고, 선진국의 뜻 또한 경제적으로 한정되어 사용하게 되었다.
특정 국가를 선진국이라 할 때의 역사와 문화적 속성, 정치 현실과 사회 의식 따위는 자율적인 변수로 제자리를 얻지 못하고, 오직 경제적 힘만이 가늠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역사에 특별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 구미 선진국을 볼 때마다 부러운 이유다.
우리가 말하는 선진국에는 자유, 민주, 인권, 정의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창출한 사상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도 아니고, 그러한 가치를 제도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모범적인 나라라는 뜻도 아니다.
그냥 좋은 전자 제품과 자동차가 집집마다 있고, 그런 것을 잘 만들어 돈을 잘 벌고 있다는 경제 강국이라는 뜻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정치 현실과 제도에서 볼 수 있는 부도덕성이나 기업가들의 몰윤리성 같은 것은 안중에 없다.
사회적 목표와 방향을 경제주의적으로 설정해 놓고 50년 가까이 거기에 모든 사회 구성원들을 몰아 넣어 경제주의적 신상으로 의식화시켜 온 탓에 돈에 의해 원수도 친구가 되는 판국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경제적 가치가 이만큼 모든 가치에 우선하게 된 경제주의적 의식으로 엮어져 온 탓에 입만 열면 자유와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를 나열하지만, 그것은 핵심의 자리에 있지 않고 경제를 둘러싸고 있는 치례적 낱말로 자리를 잡고 있다.
북한의 소멸에 대한 인식과 대응도 경제력 중심으로 전망하고 경제력이 지금보다 배쯤 증대하면 북한을 자연스럽게 흡수 통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와 같이 우리의 임무는 경제력을 키우는 일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게 되었다.
경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필요와 상황에 따라 부가적인 가치들은 당연히 유보되거나 무시될 수 있다는 의식이다. 문제는 정도의 문제이지 방향은 문제가 안 된 지 오래 되었다. 이런 잣대로 지금도 정치권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흘러갈 방향을 잃고 있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한 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