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든 직업이든 세상에 나 자신의 가치나 영향력을 나타내고 싶으면 지금 살고 있는 삶에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누구나 우선 무언가를 표현할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아무도 공감하지 않아도 이것이 나의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는 얻는 것도 있지만 물론 잃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세상과 내가 이루는 경계선을 발견하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함께 사는 사람들과 나를 구별 짓게 되지만, 나를 명확하게 인식하면 오해는 없어진다.
모호함을 쓸어내어 버릴 때 환상도 떨어져나가게 된다. 나는 투명함에 이르게 되고, 그런 투명함이 변화를 가져온다. '난 이 일이 맞지 않은 것 같아.'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지만, 처음에는 그런 느낌이 괴로울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행동을, 그 다음에는 그에 대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일이 재미없어."라 말한다면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봐야 되는 거 아냐?"라고 말하고, 또 "우울해진 것 아닐까?"라 묻는다. 삶은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는 동시에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스스로의 삶을 뒤돌아 보기를 통해 친구나 인간관계 등 어떤 것이 내 삶을 지겹게 만들고 어떤 상황이 나를 숨막하게 하는지 마침내 깨닫게 되면 슬픔이 밀려오기도 하지만, 이럴 때는 차라리 다시 허상 속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아직도 우정이 존재하는 척하고 싶어지고, 또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 마음고생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 시점은 변화의 순간이다. 이제 직접 행동으로 변화를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에 저항하거나 고함을 지르기도 싶어진다.
"고통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말을 알고 있지만, 어떤 것을 얻는다 하더라도 고통 그 자체가 싫은 것을 어떻게 하나. 내가 원하는 것과 궁극적으로 나에게 일어나야 할 변화에 대해 이미 알아버린 내 의식을 어떻게 하느냐고.
내가 처한 삶의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대해 불끈 솟아오르는 화가 없이는 이런 정신적인 위급상태를 변화시키기 위한 정신적 혹은 영혼의 울부짖음 같은 고통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변화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후에 앓는 지독한 감기와 같은 것, 마감시간을 지키느라 몸을 혹사해 생긴 끔찍한 두통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나의 영혼이 이미 상처를 입은 나에게 가하는 마지막 공격이다. "이제 알겠어?"라고 마지막으로 묻는 것이다.
내 생활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고, 그러기 위해 우선 익숙한 습관을 깨뜨리고, 내가 불안을 느끼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지나간 일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멈추면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고통만 주는 애인과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한 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