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든 주자들은 아무리 예전 기록이 좋아도 갓 마라톤을 시작한 젊은 주자들에게 안된다. 10년 동안 60만km를 뛴 구형 승용차가 이제 갓 출고되어 2~3년동안 2만km 정도 달린 씽씽 잘 나가는 세단과 비교가 안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무리 세계적인 마라톤 선수라도 많아야 20번 정도 완주하고 나면 은퇴하기 마련이다. 그런 엘리트 주자들의 이력을 넘어선 이가 이봉주 선수다. 20년간 40번의 공식 마라톤대회를 달린 이는 이봉주 선수 뿐이다.
마라토너에게 35km지점은 마라톤 벽이라는 '삶과 죽음'의 아득한 경계라고 말할 수 있다. 일단 그 경계를 지나면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길, 타는 목마름. 휘청거리는 다리. 터질 것 같은 심장의 고통을 경험한다.
기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대 절명의 순간이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해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던 국민적 영웅이 이봉주 선수였다. 대표적인 대회가 2007년 3월18일 서울에서 열린 제78회 동아마라톤이었다.
마라톤의 엔진은 폐와 심장이다. 이봉주의 최대 산소섭취량(1분간 몸무게 1kg당 산소섭취량)은 78.6ml(20대 평균 남자 45ml)이다. 선수시절 황영조의 82.5ml보다 적다. 무산소성 역치도 70% 정도로 현역 시절 황영조의 79.6%보다 낮다.
무산소성 역치란 어느 순간 피로가 급격히 높아지는 시점을 말한다. 가령 이 값이 50%라고 한다면 신체 능력이 50%를 발휘할 때 갑자기 피로가 몰려와 운동능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봉주는 35km 지점에서 무산소성 역치가 한계점인 70%를 지났다.
이봉주 선수는 2시간8분04초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맨 먼저 통과했고, 케냐의 폴 키프로프 키루이는 25초 늦은 2시간8분29초의 기록으로 2위에 골인했다. 결승선을 1.575km를 앞둔 40.62km지점에서 한때 30여m까지 떨어졌던 이봉주가 갑자기 뛰쳐나가 만든 기적이었다.
25초 차이는 거리로 환산하면 약137m. 이봉주 선수는 이 137m의 '머나먼 길'을 깡과 오기라는 정신 근육으로 한 방에 날려 버렸던 것이다. 그가 달릴 때마다 국민들이 보내준 성원이 그가 훈련하면서 만든 근육의 힘보다 더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이나 마라톤이나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이 운명을 좌우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의 시간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을 사용하되,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즉시 다시 지금의 순간으로 돌아오라는 말이다.
이 원칙에 가장 입각한 삶을 살았던 마라톤 선수가 바로 20년 국가대표 이봉주 선수다. 그래서 나는 그를 존경한다. 그런 마음에서 자신을 과거와 동일시하거나 끊임없이 미래로 투사하는 심리적 시간의 덫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