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은 자신에게 가까이 오는 대상의 차이를 정확하게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일단 그 자리를 피하여 스스로를 숨기고 나서야 자세하게 상대를 살피는 것이 자연스런 삶의 자세다. 차이를 분명하게 알려고 머뭇거리다가는 어느새 다음 생의 문턱을 넘게 될 수 있다.
다가오는 동물이 얼마 전에 친구를 잡아먹은 놈과 동일한 놈임을 알지 못하더라도 긴가민가 싶을 수도 있지만, 일단 비슷하게 생긴 놈이면 '같다'고 생각하고 도망치는 것이 상책임이 이미 신체에 새겨져 있다. 분별에 연연해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먹이와 적에 대한 기억을 동일화하려는 의지가 생겨나고, 그런 동일성을 유지하려는 욕망이 일어난다. 동일성 없는 차이란 혼돈에 지나지 않는다. 동일성은 생존이라는 필수적 유용성이 갖는 필요성 때문에 누구도 피하기 힘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특성의 유사성이나 공통점에 따라 연결하여 구분짓는 것도 동일성을 만들어 기억함으로써 다음에 어디선가 유사한 것을 보면 '같다'고 간단하게 지각하고 판단하게 하는 필연적인 사고방식의 씨앗이 된다.
거기에 이름이라도 확실하게 붙여두면, 그 대상이 눈앞에 없더라도 있는 것처럼 말하고 알려주고 명령하고 회피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말로 표현해지는 것들은 삶의 편의를 위해 무상을 지우는 동일성의 힘과 의지를 가동시켜 실상을 놓치기 쉽게 만든다.
무지가 실상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면, 이는 근본적으로 동일성의 의지나 경향 때문에 무상이 실상을 볼 수 없는 이런 조건들에서 만들어진다. 외부의 조건에 따라가며 변화하는 마음을 잘 챙겨야 하는 이유다.
달밤에 산길을 가다가 갑자기 앞에 나타난 나무를 보고 사람인 듯 깜짝 놀란 기억이나 들길을 가다 풀 속에서 놓여있는 나무 막대기를 보고 뱀인 줄 알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험도 있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전에 본 동일한 대상이라고 보는 데서 오는 오인이다.
몇 일전 전방 초소 군인들이 북한이 날려보낸 체제 선전용 자료가 담긴 비닐 봉지를 탐지용 비행체인 드론으로 보고 오인사격을 한 경우들도 그런 것이다. 이런 것들은 눈을 가려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눈을 사용하기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귀가 막혀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귀로 분별하기에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단지 빛이 없이 어둠 때문에 무상의 실상이 가려지는 것이 아니라, 눈이 필요로 하는 빛과 귀가 듣는 소리 때문에 무상의 실상이 가려지는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무지는 세상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알려고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이 오류라면 말이나 생각을 잘못해서 야기되는 오류가 아니라 말과 생각을 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야기될 수 밖에 없는 필연적 오류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드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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