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생각하거나 발견한 것이 아니라 여기 저기서 얻어들은 개념이나 지식을 늘어놓는 것은 진정한 사유도 깨달음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중도의 사유는 어쩌면 중간의 균형이 아니라 개념에 달라붙은 균형을 깨고 더 먼 극단으로 끌고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고의 가장자리이자 경계지대를 이루는 틀 자체를 깨어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 생각과 마음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곳을 찾을 수 없어 허공에 메아리 울리듯 어디를 가나 아무 일 없게 되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다.
탐내고 사랑하는 마음과 생각이 텅 비어 어디에나 집착하지 않고, 마음과 생각에 알음알이를 내지 않아 어디에나 칄흙처럼 어둡고, 그런 마음과 생각이 번뇌에 매여 있음을 정확하게 알아 허공처럼 의지할 데가 없어지는 것이 바로 깨달음의 정의이다.
인연과 마음의 법이 비어 한 생각도 초연히 아무 일 없으면, 그것이 바로 승과 속의 이름에 구애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모든 본성이나 규정성은 연기적 조건과 함께 오는 것이기에 연기적 조건을 모두 지우면 남는 것은 아무 본성도, 어떤 규정성도 없게 된다.
달걀이 병아리를 얻기 위한 부화용이면 생명체가 되지만, 삶아 반찬으로 하려면 식재료가 되고, 싫어하는 사람에게 던질 것이라면 어떤 성분인지 따질 필요가 없다. 그저 깨지면서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끈적거림의 성질로 족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떤 규정성도 없는 상태가 바로 '공(空)'이다. 어떤 규정성이나 본성도 없기에 연기적 조건에 따라 그 조건이 규정하는 규정성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기에 '공(空)'은 단지 '없음'을 의미하는 '무(無)'가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가능한 규정성들이 너무 많아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알도 될 수 있고, 식재료도 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괴롭힐 무기나 실험재료도 될 수 있는 등 규정성은 없지만 수많은 규정 가능성으로의 상태가 바로 '공'이다.
'공'이란 개념이 연기란 개념과 짝을 이루는 이유다. 달걀을 음식이나 생명체가 되게 하는 것이 연기적 조건이라면, 어떤 연기적 조건과 만나기 이전의 상태가 '공'이므로, 달걀의 본성이 '공'함을 본다는 것은 텅 빈 허공을 보는 것도,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보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만나게 될 연기적 조건에 따라 얻게 될 규정 가능성들을 보는 것이고, 그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잠재성을 보는 것이다. '공성'을 본다 함은 수많은 규정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음을 보는 것이고, 최대치로 열린 잠재성 속에서 어떤 것을 보는 것이다.
줄기세포란 유기체의 특정한 기관으로 분화되기 이전의 세포다. 수정란과 비슷한 상태여서, 아직 어떤 기관으로 분화되지 않은 상태의 세포로 어느 기관 어느 세포와 만나는가 하는 연기적 조건에 따라 다른 세포로 분화된다. 그래서 만능세포라고도 한다.
그것이 만능인 것은 아직 어떤 세포로도 분화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그것이 만나는 조건에 따라 어떤 세포로도 분화 가능한 모든 규정성 이전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규정성도 없지만, 가능한 모든 규정성을 다 가지고 있는 상태, 즉 수많은 규정 가능성을 가진 상태임을 의미한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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