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들른 대부분이 크고 작은 불편감과 그로 인한 고통과 괴로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원만한 관계 유지는 갈등이 전혀 없을 때보다 갈등 해결 방법을 합의해 가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질문을 한다고 해서 모든 질문에 일일이 대답을 할 필요는 없다. 너무 쉽게 쉽게 바로바로 대답을 하면 자신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오해하여 마음을 닫을 수도 있다. 말을 멈추어도 다음 말을 기다리듯 천천히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좋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과 밀고 당기는 밀당의 방식을 두고 일정한 ‘교전규칙’을 만들어 두는 것은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것보다 궁극적으로 훨씬 더 중요하다. "침묵이 금이다."는 속담처럼 고통을 받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힘이 되는 것은 말보다 침묵이 훨씬 더 중요할 때도 있다.
환자가 "이제 모든 것을 그만 끝내고 싶어요. 이렇게 힘 드는데 나는 왜 살아야 하는 걸까요?"라거나 "사는 것이 이제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여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라고 질문할 때가 있다. "삶에는 누구든 다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명쾌하게 대답해주면 될까?
환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의미다. 내가 자신의 불편감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떠보는 것이다. 그럴 때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이 제격이다. 어떤 때는 절망감의 깊이가 너무 깊게 느껴져 그런 질문도 어려워 가만히 있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침묵이다. 고통이나 괴로움을 겪고 있는 환자는 마음 속에 떠오르는 대로 말을 던지고 자신의 귀로 그것을 들은 뒤 머리로 다시 되새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럴 때 듣는 사람이 바로 답하지 않고 잠시 침묵하면 자신도 스스로 던진 말에 대해 생각할 여유를 가진다.
사람들이 화를 내는 데는 다 이유가 있고, 이유없이 화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화하는 말에는 적어도 최소한의 진실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든 일반화를 강요하면 당장 방어적으로 변하게 된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아무 대답이나 하는 것보다 잠시 머뭇거리거나 어색해도 침묵하는 편이 더 좋다.
침묵도 경청의 한 방법이다. 그 자리에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환자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자신 뿐이다. 실제 사례만 떼놓고 보면 자신이 옳은지 그른지 빨리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대답이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을 때가 많다는 말이다.
"말 많으면 공산당"이라는 말처럼, 말이 지나친 것은 사태를 과장되게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만약 내가 어설픈 대답을 하게 되면, 환자는 그 맞지 않는 어설픈 말만 듣게 되고 올바른 이야기는 어떤 것도 들리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
서로 말이 없어졌을 때는 조금 불편하고 잠시 어색하더라도 침묵을 충분이 받아들인 뒤 머뭇거리며 내밷는 한 마디 말이 환자에게 더 위안이 될 것이다. 일반적인 대화에서와 마찬가지로 환자와의 대화에서도 경정은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아픔을 극복하는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주는 방법의 하나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한 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
다음글 : 
이전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