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나에게 향한 시선 밖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의미가 없는 그냥 길이지만, 계속 걷다 보면 내 앞에 나만을 위한 길이 열린다. 뭐 딱히 멀리 달리지 못할 일이 생겼을 때는 가까운 거리를 갔다 왔다 해도 나 자신이 존재감을 확인하게 된다.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우회나 다름없는 길을 달려 돌아오는 것은 긴장을 풀고 진정시키고 그동안 피해왔던 결단을 내리고 삶의 의욕과 세상의 즐거움을 찾는 데 적절하다. 특별한 종교적 의미가 아니라도 달리기 자체가 주자들에게는 하나의 종교적 대상이다.
누구나 오래 달리다 보면 별도의 종교적 대상은 필요없게 된다. 주자들은 자신의 내면의 종교적 대상과 함께 길을 달리고, 나와 세상의 구분을 없애고, 일신교가 아니라 다신교의 여러 다수의 신성들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오래 달리다 보면 모두 한결같은 내면의 변화에 도달한다.
주자들이 그런 종교적 대상들을 알든 모르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쨌던 그런 대상들은 모두 그와 함께할 테니까 말이다. 달리기를 통해 신성함의 근원이자 근본으로 돌아가는 달리기가 다시 세상을 매혹시키고 있다. 1990년대 말 국제구제금융 시절의 달리기 열풍처럼.
달리기는 일생일대의 사건들을 겪으며 그로 인해 멀리 내동댕이쳐진 다음에 다시 중심을 되찾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보폭과 눈높이에 맞춰 주변 세상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나에게만 속하는 본질을 되찾는 입장을 견지하게 해준다.
세상으로 향하는 출구이자 호기심을 채우는 훈련이다. 정신상태와 행복한 겸허함을 내포하고 있으며, 나의 습관적인 일상이 잊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 가치의 단계를 바로 잡아준다. 달리기는 주변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나 자신의 행위들에 더욱더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달리기는 자 자신을 세상에 그대로 드러내고, 거센 바람 속에 야생의 세상을 보게 하고, 인간적인 겸손함과 인간 조건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만든다. 자아를 정결히 하고자 하는 탐색이고 완전히 종교와 무관한 관점에서 일종의 의식 검사에 대한 탐색이기도 하다.
주자들의 마음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해방이다. 과거와 현재의 내 인생과 내 일, 내 가족들, 그리고 내 우정, 이 모든 것이 그냥 경이롭고 기적적으로 여겨진다. 달리기는 역사와 사회, 그리고 문화적 영향을 받는 공간에서 일어나지만 무엇보다도 땅과 관련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관의 대면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 몸을 맡기면서 태양 아래 소나무 향을 맡고, 강물의 구불구불한 선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며 하늘에 수수께끼를 남기는 새들의 자유로운 비행, 오솔길을 태평스럽게 지나가는 바람의 모습을 느끼는 것은 도시 인간에게는 최고의 경험이다.
길은 항상 세상과의 적절한 거리, 순간에 대한 유용성을 마련해주고, 명상이 확산된 상태에 빠져들고 충만한 감수성을 불러일으킨다. 지나치게 무거워 그 근심의 무게로 삶을 방해하는 생각의 가지들을 잘라낸다.
달리기 초반에는 고통의 지배를 받지만, 발걸음을 옮길수록 고통은 희석되고 상당한 힘으로 잡고 있던 멱살을 놓아버린다. 내면의 혼란을 정리하고 다시 일어선 달리기는 긴장의 근원을 없애지는 못할지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 해결책을 돕는다.
달리기는 그저 존재 자체를 다시 움직이게 하면서 지나치게 경직되었던 이야기로부터 멀어지며, 세상으로부터 동떨어졌다는 느낌에서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속한 달리는 시간들을 어떻게 만들고, 거기에 나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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