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의 기억이 죽어서도 그대로 계속 남아있다면, 다음 생에서 어떤 직업으로 살던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좋은 기억이면 지우려 할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좋았던 기억을 가지고 어찌 좋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윤회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전생의 기억들이 모두 지워지고, 전생과의 연속성이 완전히 사라져야만 가능한 것이다. 즉 '나'라는 실체가 없어야 윤회의 시간을 관통하는 것은 수많은 삶, 그 모든 삶을 살았던, 즉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될 수 있어야 윤회가 가능하다.
어떤 누구도 될 수 없는 '아무도 아닌 사람'만이 윤회하는 것이다. 그 '아무도 아닌 사람'은 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절대적 가변성을 갖는 어떤 능력을 말한다. 절대적 가변성을 갖는 이 능력을 '무아'라고 한다.
윤회는 연기적 조건에 따라 수많은 존재자가 될 수 있는 이 잠재적 능력이 펼쳐지는 장이 될 능력을 '생명'을 부른다면, 윤회란 니체의 말처럼 영원한 시간을 반복하여 되돌아오는 어떤 동일한 힘이 그때마다 다른 양상들로 펼쳐지는 장이 될 것이다.
윤회는 생물학적 죽음에 의해 분할되는 여러 생에 대해서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죽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다른 삶을 살아갈 것처럼, 짧은 생을 사는 우리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여러 삶을 산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부산에서 대학을 나오고, 서울에서 의사를 하다가 외국에 가서 봉사를 할 수도 있다. 길이가 다르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다를 것이 없는 연속적인 삶이다. 윤회는 단지 생물학적 죽음이 다른 삶들 사이에 끼어있을 뿐이다.
하나의 생 안에서 이처럼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넘어갈 때마다 이 몸 안의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 이전에 '나'라고 명명되던 누군가가 죽고 다른 누군가가 태어나야 한다. 즉 윤회는 태어남과 죽음이 아니라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이다.
농사를 짓던 '나'가 학교에서 그대로 지속되어서는 안 되며, 그대로 사회로 나간다면 제대로 의사로서 역할을 할 수가 없다. '나'라고 부르던 존재자 안에서 누군가가 죽는 이런 사건이 바로 비인칭적 죽음이라 할 수 있다.
장소와 형태를 바꾸어가며 하나의 생 안에서 내가 사는 삶이란, 하나의 '나'가 죽고 다른 '나'가 태어나는 과정의 연속이란 점에서 일종의 '윤회'라 할 수 있다. 이런 비인칭적 윤회란 관점에서 보면 '나의 삶'에서 내가 거쳐가는 '모든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어야 하며, 거기에 '나'는 없을 것이다. 즉 나는 죽은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은 '무아'라고 명명될 수 있는 잠재적 능력이 그때마다 연기적 조건에 따라 상이한 '나'들, 그 모든 '나'가 되며 펼쳐지는 과정이다.
여러 생의 윤회든, 한 생 안에서의 윤회든, 윤회란 '나'나 '진아'보다는 '무아'나 '생명'이라고 불리는 것이 더 적절한 어떤 힘의 영원한 흐름이다. 윤회를 긍정한다는 것은 이 힘의 되돌아옴, 이 흐름의 가변성 그 자체를 긍정하는 것이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기대합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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