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나에게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다. 관절염, 당뇨, 심장병 등 만성질환의 치료에 의사-환자 사이의 효과적인 대화가 약물 치료에 못지 않게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나라는 선진 외국과 달리 진료수가가 낮아 원가의 2/3 밖에 되지 않고, 행위에 따라 지급을 하기 때문에 많은 환자를 보지 않으면 의료기관이 적자를 보게 되어 20초 진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환자와 소통을 할 수 없는 진료환경이 되고 있다.
의사들 역시 이런 진료 환경에 답답함을 느끼지만 정부에서는 전혀 현장의 소리에 무감각할 뿐만 아니라 변화의 필요성조차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의사-환자간의 신뢰 구축을 위한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같은 병을 가지고 있어도 모든 환자를 동일시 할 수는 없다. 개개인의 치료 방침은 똑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가 겪고 있는 고통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며 귀를 기울여야 환자가 겪고 있는 고통에서 벗어날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지만 말이다.
환자의 고통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것은 고통을 여러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이지 환자와 함께 고통을 느낀다는 말이 아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질병의 차이 외에 개인의 성격, 나이, 경제적인 여건, 직업, 시간적 여유 등의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사람마다 다른 생각이 드는 것이 정상적이다.
맞춤 양복이 기성복보다 더 편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바람직한 대화가 이뤄졌을 때 환자에게 꼭 맞는 치료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즉 말하는 상대의 감정을 따라가지 않고 나 자신의 감정을 느끼면서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의 이야기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아 나는 지금 이렇게 느끼고 있구나'하고 나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가 분출하는 감정들에 휩쓸리기 쉽게 된다. 그의 고통이 마치 나의 고통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애정을 갖고, 환자가 의사를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본적인 생명존중과 인류애적 자세란 고통 받는 환자와 일체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상대가 스스로 답을 찾고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돕는 경청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환자들에게 인기가 좋은 의사들은 하나같이 실제 진료 시간엔 환자가 왜 병원에 왔는지, 가족 환경은 어떤지, 개인적인 스트레스 요인은 무엇인지 등을 파악하는 것에 더욱 중점을 둔다. 환자의 신뢰를 얻었을 때 의사의 진료가 더 큰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환자와의 소통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고통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고통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통을 분석하는 것이 바로 진료 과정에 경청의 힘을 살려 환자를 돕고 양질의 진료를 통해 환자의 질병 치유를 돕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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